들일 - 도종환

김춘화
2021-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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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일을 다니며 가을 한 철 보냈다

뒷주머니에 찔러 주던 백 원짜리

환희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면

니코틴 색으로 손에 배는 고적한 피로

콩과 깨를 거두고 무 두 접 뽑아 묶어

얼지 않을 땅에 묻고 땀을 닦으며 일어서도

어설프기 짝이 없는 나의 노역

베고 또 베어 버려도 벌판은 남아 있고

지난날의 쓸쓸함도 거기 어디 남아 있고

등에 얹은 볏가마니는

지고 가야 할 나이보다 무거웠다

먼지를 털며 올려다보는 새털구름 밑으로

하늘은 배고픔처럼 어두워오는데

시간은 나를 앞질러 갈 만큼 간 걸 알겠다

돌아오는 거리에서 마른 구역질을 하고

공연히 주먹을 쥐었다 펴곤 했다

내일은 소장수 백씨네 아랫텃논

마당질을 끝내러 가야 한다

호박잎을 걷어낸 양철지붕 위에서

바람이 떼를 지어 붉은 녹을 걷어차며

종점 빈터로 몰려가는 늦가을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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