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죽 이전의 손 - 안희연

김춘화
2024-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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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새벽은 분주합니다


밀가루 포대를 실은 트럭이 비밀스럽게 다녀가면

테이블 위로 쏟아지는 새하얀 함성들


그 안에 손을 찔러 넣을 때마다

이루 말할 수 없게 뭉클해집니다


이제는 가루가 된 누군가의 속살을 만지는 기분

타오르고 타오르다 주저앉은

그러나 나는 죽음을 삶으로 되돌리는 손을 가지고 있어요

악몽을 녹이는 설탕을 추억을 부풀리는 이스트를 넣어줍니다


이곳은 향긋한 숨들이 피어오르는 정원

빵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평생을 빚어온 모양도 마음의 온도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진다는 사실

오늘은 새카만 속을 채워 넣어야 하는 순간에 손이 헛돕니다


태양이 떠오르는 속도에 맞춰

노릇노릇 익어가는 이야기들

정오, 가장 많은 꽃들이 피어나는 시간입니다 


이제는 기다리는 일만이 남았습니다

이렇게 홀로 앉아 빵마다 낯선 이름을 붙여보기도 해요

호시절, 폭풍우, 토성의 고리……

맛볼 수 없어 아름다운 것들의 이름을


이곳을 찾는 이는 예전만큼 많지 않습니다

저녁은 쉽게 눅눅해지고

어떤 하루는 떨이로 팔려나가기도 하지만


봉지 가득 빵을 사들고 귀가하는 어깨를 봅니다

뒤축이 닳은 구두가 저녁에서 밤으로 그를 데려갑니다


나는 그런 이들을 위해 밤늦도록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모든 반죽 앞에 어둠의 조도를 맞추는 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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