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대하여 - 신경림

김춘화
2023-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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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라고 해서 다 크고 높은 것은 아니다.

다 험하고 가파른 것은 아니다.

어떤 산은 크고 높은 산 아래

시시덕거리고 웃으며 나지막히 엎드려 있고,

또 어떤 산은 험하고 가파른 산자락에서

슬그머니 빠져 동네까지 내려와

부러운 듯 사람 사는 꼴을 구경하고 섰다.

그리고 높은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순하디 순한 길이 되어 주기도 하고

남의 눈을 꺼리는 젊은 쌍에게 짐짓

따뜻한 숨을 자리가 돼 주기도 한다.

그래서 낮은 산은 내 이웃이던

간난이네 안방 왕골자리처럼 때에 절고

그 누더기 이불처럼 지린내가 배지만

눈개비나무 찰피나무며 모싯대 개쑥에 덮여

곤줄박이 개개비 휘파람새 노랫소리를

듣는 기쁨은 낮은 산만이 안다.

사람들이 서로 미워서 잡아 죽일 듯

이빨을 갈고 손톱을 세우더라도

칡넝쿨처럼 머루넝쿨처럼 감기고 어우러지는

사람 사는 재미는 낮은 산만이 안다.

사람이 다 크고 잘난 것만이 아니듯

다 외치며 우뚝 서 있는 것이 아니듯

산이라 해서 모두 크고 높은 것은 아니다.

모두 흰 구름을 겨드랑이에 끼고

어깨로 바람 맞받아치며 사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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