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설레었지요 - 황인숙

김춘화
2023-12-17
조회수 53


그때는 밤이 되면

설레어 가만히

집 안에 있을 수 없었지요


어둠이 겹주름 속에

감추었다 꺼내고

감추었다 꺼냈지요, 만물을


바람이 어둠 속을 달리면

나는 삶을 파랗게

느낄 수 있었어요

움직였지요

삶이 움직였지요

빌딩도 가로수도

살금살금 움직였지요

적란운도 숲처럼 움직였지요


나는 만물이 움직이는 것을

자세히 보려고 가끔 발을 멈췄어요

그러면 그들은 움직임을 멈췄어요


그들은 나보다

한 발 뒤에 움직였어요

달린다, 달린다,

움직인다, 움직인다,

우리는 움직임으로 껴안았지요


그때는 밤이 되면

설레어 가만히

집 안에 있을 수 없었어요


바람이 어둠 속을 달립니다

전신이 팔다리예요

바람이 자기의 달림을

내 몸이 느끼도록

어둠 속에서 망토를 펄럭입니다

나는 집 안에서

귀기울여 듣습니다

바람은 달립니다

어둠의 겹주름 속을


그때는

밤이 되면

설레어 가만히

집 안에 있을 수

없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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