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을 차리며 - 문숙

김계희
2017-12-19
조회수 907



밥상을 차리며 - 문숙



어느 문학상시상식에 가서 축하 반 부러움 반을 섞어 박수 치다가
상복 없는 시인들끼리 모여 서로서로 시 좋다고 칭찬하다가
문학상은 못 받아도 밥상은 받고 산다는 한 시인 농담에 웃어주다가
밥상이 문학상보다는 수천 배는 값진 것이라고 맞장구치다가
밥은 없고 술만 있는 자리에서 헛배만 채우다가
집에 와서 식구들의 밥상 차린다
일생 가장 많이 한 일이 나 아닌 너를 위해 밥상 차린 일임을 생각하다가
오나가나 들러리밖에 안 되는 신세에 물음을 가져보다가
훌륭한 걸 따지자면 상 받는 일보다 상 차리는 일이라 생각하다가
그래도 한 번쯤 상이든 밥상이든 받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다가
이런 마음이 내가 나를 들러리로 만드는 것이라 반성하다가
이번 생은 그냥 보험만 들다가 가겠구나 생각하다가
밤새도록 나를 쥐었다 놓았다 쥐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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