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짓것 - 이정록

김춘화
2022-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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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업 기념 반값 미용실에 갔다가

시궁에 빠진 미운 오리 꼴이 되었다.

단골집에 가서 다시 다듬었다.

더 이상하다. 빈 털털이가 되었다.

까짓것, 빡빡머리 스님도 산다.


아이들이 나만 보면 툭툭 치고 지나간다.

나보다 낫다는 걸 확인하는 거다.

까짓것, 떡갈나무는 잎이 넓어서 바람도 크다.

태평양 범고래는 덩치가 커서 마음도 크다.


이 년 사귄 여친이 전학 온 서울 것과 사귄다.

아직 이별 문자가 없다는 건 서울 놈과는 우정이란 거다.

까짓것, 사랑과 우정도 구별 못하면 진짜 촌놈이다.

친구끼리 영화관 가고 팔짱 끼는 건 당연하다.

우정으로 마음을 가꿔서 진한 사랑으로 돌아올 거다.

까짓것, 취업이든 사랑이든 경력자 우대다.


난 어려서부터 신부름을 잘했다.

망을 잘 보고 빵과 담배를 잘 사 나른다.

까짓것, 겨울이 오기 전에 살만 조금 빼면

산타가 되어서 굴뚝도 들락거릴 수 있을 거다.

선물 심부름은 산타가 최고니까 말이다.


쪽지 글만 남기고 떠난 아버지 때문에

엄마가 운다. 여동생도 운다. 냉장고도 운다.

까짓것, 이라고 말하려다가 설거지하고

헛기침 날리며 피시방으로 알바 간다.

까짓것, 돈은 내가 번다.

까짓것, 가장을 해보기로 한다.






이정록 시집 <까짓것> 창비교육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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