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 문보영

김춘화
2022-07-24
조회수 198



끝, 하고 발음하면

자연히 웃는 입 모양을 하게 된다

그래서 웃을 줄 모르는 아이에게

웃는 법을 가르칠 때

끝을 발음해 보도록 하면 좋다


자, 끄읕, 해 보렴

입술을 양쪽으로 살짝 당겨 봐

빨랫줄의 양 끝을 잡아당기듯

그 빨랫줄에 하얀 시트를 걸어 널듯


멍의 가장자리를 가위로 오리며

층계참에서 우리는


끝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면서

끝처럼 서 있잖아


끝이라는 말은 언제 내뱉어야 가장 예쁠까,

아마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사진을 찍는 순간 다 같이

치이즈 대신

끝, 하고 외치면

세상이 조금 환해질 텐데

이런 생각을 했을까


기어코 웃고야 마는 네 속에는 끝이 많구나

알약을 털어 넣는 순간 뒤로 꺾이는 목의 각도로

끝과 끝이 서 있는 곳에서








문보영 시집 <책기둥> 민음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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