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후에 지(芝)에게 - 최승자

김춘화
2023-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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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네 눈빛이 닿으면 유리창은 숨을 쉰다.

지금 네가 그린 파란 물고기는 하늘 물 속에서 뛰놀고

풀밭에선 네 작은 종아리가 바람에 날아다니고,


이상하지,

살아 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란다.

빈 벌판에서 차갑고도 따스한 비를 맞고 있는 것 같지.

눈만 뜨면 신기로운 것들이

네 눈의 수정체 속으로 헤엄쳐 들어오고

때로 너는 두 팔 벌려, 환한 빗물을 받으며 미소짓고······

이윽고 어느 날 너는 새로운 눈을 달고

세상으로 출근하리라.


많은 사람들을 너는 만날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네 눈물의 외줄기 길을 타고 떠나가리라.

강물은 흘러가 다시 돌아오지 않고

너는 네 스스로 강을 이뤄 흘러가야만 한다.


그러나 나의 몫은 이제 깊이깊이 가라앉는 일. 봐라,

저 많은 세월의 개떼들이 나를 향해 몰려오잖니,

흰 이빨과 흰 꼬리를 치켜들고

푸른 파도를 타고 달려오잖니.

물려 죽지 않기 위해, 하지만 끝내 물려 죽으면서,

나는 깊이깊이 추락해야 해.

발바닥부터 서서히 꺼져들어가며, 참으로

연극적으로 죽어가는 게 실은 나의 사랑인 까닭에.


그리하여 21세기의 어느 하오,

거리에 비 내리듯

내 무덤에 술 내리고

나는 알지


어느 알지 못할 꿈의 어귀에서

잠시 울고 서 있을 네 모습을,

이윽고 네가 찾아 헤맬 모든 길들을,

-- 가다가 아름답고 슬픈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의 동냥바가지에 너의 소중한 금화 한 닢도

기쁘게 던져 주며

마침내 네가 이르게 될 모든 끝의


시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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