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이제, 어쩌면 마침내, 조용한 공간이 되었다. 아무도 오지 않는 공간, 주인도 오지 않는공간.
나에게는 오랜 시기 단절이 있었다. 더 이상 아무 말을 쓰고 싶지 않은 단절.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사실 신(god)에 관한 이야기였다.
달력도 마찬가지였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짧은 글 속에 그 이야기들을 담을 수 없었고, 그래서 이해와 공감을 받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점점 나는 쓸 말들이 없어졌고, 이곳은 이제, 어쩌면 마침내, 조용한 공간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편안해 진 것 같다. 사람들이 달력을 사지 않게 되자 달력을 만드는 일이 편안해진 것처럼, 나는 이러한 아이러니를 걸어야 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서 살아가는 일, 그리고 독백은 쓸쓸하여서, 쓸쓸하지 않은 일기처럼 몇 사람이라도 편견없이 읽는 진실한 글을 다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이들의 피드에 좋아요를 누르지 않아도 되는 공간에서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편안한 느낌을 준다.
만약 달력이 예전처럼 많이 팔렸다면 나는 엄마의 그림으로 달력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계속해서 포토샵질을 해대며 다 완성된 그림을 다시 분홍색 보라색 연두색으로 바꾸는 일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나의 일을 수 십년 동안 치열하게 하다 보면 그 흐름에서 신과의 연결성을 알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나의 삶은 달력이라는 것을 빼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 것 같다. 사람의 행위, 과정, 결과는 자신의 의도에 의해 신과 연관되어 있다. 나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하는 방식으로 기도를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늘 신과 깊숙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십오여년 전, 나는 많은 영적인 그룹이 군데군데서 무리 지어 모이고 있는 느낌을 받았고, 몇 해전 부터는 유투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열망을 가지고 있음을 알았고, 그래서 여러번 썼다가 지웠던 이러한 이야기가 편안해진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나는 많은 것을 저절로 알았던 것 같다. 그것은 느낌 같은 것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것들을 다 맞는 것이었다.
왜 사람을 만나지 않게 되었는지를 오랫동안 생각했다. 언젠가부터 내가 보는 많은 것들은 사진처럼 무수히 마음에 박혀 견딜 수 없는 마음이 되곤 했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는 것, 말을 하는 것이 좋지가 않았다. 마주 앉으면, 잠시 손을 잡으면, 어깨를 안으면,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오래된 벽지에 배인 냄새처럼 그들의 냄새가 하루 이틀 떠나지를 않았다. 마주 앉으면, 잠시 손을 잡으면, 어깨를 안으면, 내가 순간 그 사람이 되어 그 사람의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쓸쓸함을 보게 되는 거였다. 그 마음은 참을 수 없이 아프고, 어렵고, 힘겨워 견딜 수 없는 마음이 되어버리곤 했다.
초등학교 사학년 때 방과 후면 학교 옥상에 올라가 그림을 그렸다. 옥상에서는 화조동 마을이 보이고, 어느 날 멀리 있는 집 방문 안에서 울고 있는 여자의 다리를 보았다. 아니, 그럴리가 없지. 그냥 다리였던 거지, 무릎부터 발까지 방문 사이로 보이는 한낮의 그냥 자그마한 다리. 그런데 나는 그때 그 여자의 울음을 느꼈고, 그녀가 남편과 싸웠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주 그녀가 아무도 몰래 맥없이 눈물을 짓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모른다. 고등학교때 수업을 듣고 있으면 말하지 않는 선생님의 딴 생각들이 나에게 자주 들어온 것 같다. 혼자 밥을 먹고 있는 급우의 생각이 내 생각 속으로 들어왔다. 낯선 사람을 만나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고 돌아와 누웠는데 돌덩이가 마음에 얹힌듯 숨쉬기 어렵게 슬프고, 퀭하고 퀭하게 마음이 아파 뜬 눈으로 밤을 세운 날들, 그럴때는 무수한 생각이 파고들다가 그의 어떤 지점을 선명하게 알게 되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영혼이 그들과 채널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떻게 이 말들을 다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에게는 말이라는 게 부질없이 여겨졌다. 사람은 자신 내면의 말하지 않는 부분이 이해되고 싶어하지만 들키고 싶어하지는 않아 한다. 그래서 나는 진짜가 아닌 말, 아무것도 아닌 말들을 하곤 했고, 언젠가부터는 그게 부질없고 재미없어서 사람들을 피했던 것 같다.
어제부터는 정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려고 했는데 어느덧 아침이고 새들이 지저귄다. 이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면 도심에도 새들이 이렇게 많은지 새삼 놀라곤 한다. 새소리를 들을 때면 조병범님의 책 <시민과학자, 새를 관찰하다>와 <생명을 보는 눈>이 떠오른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꼭 숲에 가서 다시 읽기로 생각했었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이 책은 너무 아름다워서 그런 후에 꼭 포스팅을 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시간이 흘러버려 우선 링크만 하니 꼭 읽어보시기를 권하고 싶다. 이후에 나의 감상을 꼭 쓸 일이 있을 것이다.
시민과학자, 새를 관찰하다 / 저자 조병범
생명을 보는 눈 / 저자 조병범
이곳은 이제, 어쩌면 마침내, 조용한 공간이 되었다. 아무도 오지 않는 공간, 주인도 오지 않는공간.
나에게는 오랜 시기 단절이 있었다. 더 이상 아무 말을 쓰고 싶지 않은 단절.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사실 신(god)에 관한 이야기였다.
달력도 마찬가지였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짧은 글 속에 그 이야기들을 담을 수 없었고, 그래서 이해와 공감을 받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점점 나는 쓸 말들이 없어졌고, 이곳은 이제, 어쩌면 마침내, 조용한 공간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편안해 진 것 같다. 사람들이 달력을 사지 않게 되자 달력을 만드는 일이 편안해진 것처럼, 나는 이러한 아이러니를 걸어야 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서 살아가는 일, 그리고 독백은 쓸쓸하여서, 쓸쓸하지 않은 일기처럼 몇 사람이라도 편견없이 읽는 진실한 글을 다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이들의 피드에 좋아요를 누르지 않아도 되는 공간에서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편안한 느낌을 준다.
만약 달력이 예전처럼 많이 팔렸다면 나는 엄마의 그림으로 달력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계속해서 포토샵질을 해대며 다 완성된 그림을 다시 분홍색 보라색 연두색으로 바꾸는 일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나의 일을 수 십년 동안 치열하게 하다 보면 그 흐름에서 신과의 연결성을 알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나의 삶은 달력이라는 것을 빼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 것 같다. 사람의 행위, 과정, 결과는 자신의 의도에 의해 신과 연관되어 있다. 나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하는 방식으로 기도를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늘 신과 깊숙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십오여년 전, 나는 많은 영적인 그룹이 군데군데서 무리 지어 모이고 있는 느낌을 받았고, 몇 해전 부터는 유투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열망을 가지고 있음을 알았고, 그래서 여러번 썼다가 지웠던 이러한 이야기가 편안해진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나는 많은 것을 저절로 알았던 것 같다. 그것은 느낌 같은 것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것들을 다 맞는 것이었다.
왜 사람을 만나지 않게 되었는지를 오랫동안 생각했다. 언젠가부터 내가 보는 많은 것들은 사진처럼 무수히 마음에 박혀 견딜 수 없는 마음이 되곤 했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는 것, 말을 하는 것이 좋지가 않았다. 마주 앉으면, 잠시 손을 잡으면, 어깨를 안으면,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오래된 벽지에 배인 냄새처럼 그들의 냄새가 하루 이틀 떠나지를 않았다. 마주 앉으면, 잠시 손을 잡으면, 어깨를 안으면, 내가 순간 그 사람이 되어 그 사람의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쓸쓸함을 보게 되는 거였다. 그 마음은 참을 수 없이 아프고, 어렵고, 힘겨워 견딜 수 없는 마음이 되어버리곤 했다.
초등학교 사학년 때 방과 후면 학교 옥상에 올라가 그림을 그렸다. 옥상에서는 화조동 마을이 보이고, 어느 날 멀리 있는 집 방문 안에서 울고 있는 여자의 다리를 보았다. 아니, 그럴리가 없지. 그냥 다리였던 거지, 무릎부터 발까지 방문 사이로 보이는 한낮의 그냥 자그마한 다리. 그런데 나는 그때 그 여자의 울음을 느꼈고, 그녀가 남편과 싸웠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주 그녀가 아무도 몰래 맥없이 눈물을 짓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모른다. 고등학교때 수업을 듣고 있으면 말하지 않는 선생님의 딴 생각들이 나에게 자주 들어온 것 같다. 혼자 밥을 먹고 있는 급우의 생각이 내 생각 속으로 들어왔다. 낯선 사람을 만나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고 돌아와 누웠는데 돌덩이가 마음에 얹힌듯 숨쉬기 어렵게 슬프고, 퀭하고 퀭하게 마음이 아파 뜬 눈으로 밤을 세운 날들, 그럴때는 무수한 생각이 파고들다가 그의 어떤 지점을 선명하게 알게 되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영혼이 그들과 채널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떻게 이 말들을 다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에게는 말이라는 게 부질없이 여겨졌다. 사람은 자신 내면의 말하지 않는 부분이 이해되고 싶어하지만 들키고 싶어하지는 않아 한다. 그래서 나는 진짜가 아닌 말, 아무것도 아닌 말들을 하곤 했고, 언젠가부터는 그게 부질없고 재미없어서 사람들을 피했던 것 같다.
어제부터는 정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려고 했는데 어느덧 아침이고 새들이 지저귄다. 이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면 도심에도 새들이 이렇게 많은지 새삼 놀라곤 한다. 새소리를 들을 때면 조병범님의 책 <시민과학자, 새를 관찰하다>와 <생명을 보는 눈>이 떠오른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꼭 숲에 가서 다시 읽기로 생각했었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이 책은 너무 아름다워서 그런 후에 꼭 포스팅을 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시간이 흘러버려 우선 링크만 하니 꼭 읽어보시기를 권하고 싶다. 이후에 나의 감상을 꼭 쓸 일이 있을 것이다.
시민과학자, 새를 관찰하다 / 저자 조병범
생명을 보는 눈 / 저자 조병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