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리

김계희
2022-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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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8. 14

새벽 두 시가 넘어 밖으로 나왔다. 숲의 공기가 나를 부르는 느낌이 들었다. 새벽의 숲은 귀뚜라미와 풀벌레들의 장엄한 울음소리로 완전히 잠겨 있었고, 비를 가득 품은 나뭇잎에서 떨어지는 무수한 빗방울 소리가 거대한 밤의 중심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하늘은 어두워 별이 보이지 않았지만 무수한 별의 반짝임을 느꼈고 신선한 바람과 공기가 풀벌레 소리와 함께 나의 몸을 가득 에워쌌다.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며 숲 가운데를 수 십 바퀴 걸었다. 무언가가 나를 계속 걷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지금의 고통이 잠시 후 끝나리라는 것을,  '완전히 깨달은 내'가 잠시 후 체험 될 것이라는 것을,  이 딜레마가, 그 수십년의 시간들이 해명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작고 둥근 숲의 한가운데서 내 머리 위의 광활한 우주가 느껴졌다.  

근 일년 동안 나는 불길한 예감과 목을 죄어오는 압박감 속에서 지냈다. 아이들과 있을 때면 그런 느낌은 사라졌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순간 순간 나를 스쳐가는 그 느낌 속에서 나는 중심을 잃어가고 있었다. 서울에서 철호 선생님의 전시회를 보고 오빠의 집으로 가는 동안 불안감은 육체적인 현상으로 나타나 숨을 쉬기도 힘든 상태가 되었다. 오빠와  새벽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오빠는 요가난다의 영혼의 자서전을 읽어 주었다. 오빠가 잠이 들자 나는 헤이리의 새벽 숲으로 나왔고, 그때 나를 옥죄던 것들이 곧 해명되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나는 오랫동안 어머니의 삶을 바꾸고자 노력했다. 그 집요한 집착이 어머니에게는 폭력이었고, 자신의 삶을 힘들게 몰아간 어머니의 순수함과 헌신은 나에게는 폭력이었다. 우리는 몸을 가지고 태어나 인간의 굴레 안에서 인간이 하는 사랑을 만들고, 그 사랑은 완전하지 않기에 딜레마의 상황을 창조한다. 그 딜레마를 인간의 눈으로 바라보고 해결하려 할 때 더욱 복잡한 딜레마 속으로 빠진다. 이 딜레마의 굴레 안에 치밀하고 정교한 우주의 법칙과 질서가 있고, 그것은 영혼의 눈으로 보아야만 처절한 현실이 비로소 해석될 수 있다.

 
나는 어머니가 거대한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죽음에 앞서, 그녀가 행했던 그 순수함을 다시 일으켜 다시 거대한 사건을 만들려 하는 것임을 안다. 나는 언제나 그것을 막고자 했다. 어머니가 그 순수함으로 일으킨 사건들을 막고자 했다. 하지만 지금껏 한번도 그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 무모하고도 순진무구한 인간이 행하려 했던 것은 언제나 '사랑'쪽이었기 때문이다. 질기게도 질기게도 어머니는 늘 그 방향을 향해 가고자 했고, 그 사랑이 우리가 생각하는 범주를 넘어서는 거였기에 그것은 비난을 받았다. 영혼의 눈으로 보지 않는다면 그러한 행위는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고 또한 이 삶도 도저히 해석될 수 없을 것이다.

 
헤이리 숲을 걷는 동안  맑고 차가운 바람 속에서 나는 찬란한 인식의 상태에 있었고 우주의 근원 속에 있었다. 그 깊고도 짙은, 우주와 영혼이 하나 된  느낌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고통이 감미로운 아픔을 동반한 채 나에게서 분리되어 나란히 걷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어머니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고통 속에서 영혼의 목적을 깨닫는 것이 그녀의 삶의 임무라면 나는 그녀의 고통을 직시하여야만 하고 그 고통을 잘 마칠 수 도와주어야 한다. 감미로운 고통이 파고들지만 영혼이 감미로운 미소를 띠고 고개를 끄덕인다. 이 고통에 맞닿아 있는 순결함과 그 일치가 너무도 완벽하여 경이로왔다. 인간으로서는 감미로운 고통이었고, 영혼으로서는 감미로운 축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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