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형 녹음기 속 말들

김계희
2022-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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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dré Gagnon_Romance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_  


드가의 복제화를 끼고 제일 서적 육교를 건너던 날, 그날 오후 나는 도시바 소형 녹음기를 잃어버렸다. 아무말이나 아무말이나 집어넣던 소형 녹음기 속의 이야기는 끝을 맺지 못했고, 그날 이후 나는 아무말이나 아무말이나, 의미없는 또 아무 말을 버려진 나무 의자에 대고 부스러진 축축한 나뭇잎에 대고 했다. 굴뚝의 연기가 사라지는 지점에 머무는 감미롭고 수상한 이야기들을 뱉으며 감천식당을 나오면, 아이들은 야간 출입금지의 실기실 창문을 깨고 들어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이 아이들은 위대한 예술가가 되려고 하는 걸까? 늦은 새벽 집으로 돌아오면 잠들어 계신 어머니는 아침이면 어디론가 사라져 있었지만, 매일 어디를 가시느냐고 묻지 않았다. 머리맡에 놓인, 사라진 어머니의 시간과 교환 된 초라한 돈을 주머니에 꽂고 밖을 나오면 세상은 다르게 펼쳐져 있어서, 동아쇼핑  광장 위로 비둘기가 날고. 바람에 줄줄 아이스크림은 녹고,  물빠진 랭글러와 금색 머리칼은 멋지게 어울려서, 내 이십대의 어머니는 그냥 어머니로만 살면 되었다.

기차가 덜컹거리는 소리, 목적지를 알리는 알아들을 수 없는 이국 나라의 말, 낯설고, 아무도 없고, 그래서 문득 가슴이 쏴해 오는 이국 향기에 어질어질 취해있던 내 삼십대의 어머니는 그냥 어머니로만 살면 되었다. 홀로 수술실로 들어가는 어머니에게 현금카드를 건네고 허겁지겁 인쇄소로 뛰어가던 내 사십대의 그날, 나는 처음 뒤를 돌아보았고, 처음으로, 불합리한 일이 오랫동안 어머니에게 행해지고 있음을 알았다.

나는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면 되었다. 그냥 처음부터 그렇게 결정되었다. 그러는 동안 어머니가 어떻게 지냈는지는 알지 못하겠다. 꽥꽥 소리를 지르고, 꽥꽥 술을 마시고, 꽥꽥 토하고, 마음에 분노가 있었어.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을거면 그림을 안그리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말한 적이 있는 것도 같지만, 어머니의 말은 중요한 게 아니라서, 나는 꽥꽥 그림을 그렸고, 내 소형 녹음기 속의 아름다운 말들은 몇 년 후 완전히 사라졌다.

그래서 이제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해. 돈을 벌어야 하는 일은 너무 거칠어. 힘들어. 



엄마 그림 2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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