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그림展>을 마치고

김계희
2022-05-20
조회수 105


아주 오랜만에 외출을 한 느낌입니니다. 일찍 돌아가실 줄 알았던 어머니는 아직 건강히 살아 계셔 그저께는 한번도 상상한적 없던 어머니의 전시회를 마쳤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열흘 동안 무수한 과거와 미래의 시간이 교차하는 체험들이 있었습니다. 이제 간결하고 쉽게 이것들을 해석할 수 있어서, 내가 이만큼 자랐구나 하는 생각에 좋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부드럽고 따뜻한 기운이 감도는 보나 갤러리는 참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림을 걸기 애매하게 튀어나와 마감된 벽이 나중에는 좋아졌습니다. 덕분에 그 벽을 비우고 이층으로 올라가는 벽 한켠에 열한점의 그림을 걸었고, 관장님이 매만졌을 스테인드글라스와 투과하는 빛이 그림과 참 어울려, 나무계단을 오르내릴때면 어머니의 그림이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었던 듯한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언제부터 숨어 있었는지 모를 계단 사이에 박혀있는 못들을 하나씩 줍다가 어느날은 그렇게 박혀 있는 못들이 더 좋은 느낌을 주어 줍기를 그만 두었습니다.
못을 줍기위해 허리를 숙일때면, 그럴리는 없겠지만, 문득 진딧물 냄새가 맡아지는 듯 해서, 아주 옛날 오래전에 이 자리에 장미가 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니스로 마감된 황토색 나무 난간은 장미보다 제라늄이 더 어울릴것 같긴 하지만, 굳이 제라늄이 피어있지 않더라도 어머니의 그림을 등지고 앉아 바라보는 거리는 참 평온하고 햇살이 밝아, 보이는 거리가 붉은 제라늄 같았습니다.

이 전시회는 효심이나 혹은 어떤 기록의 의미가 제게 컷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그림은 제 오랜 미술의 삶에 커다란 각성을 일으켰고, 그것은 오래전 프로방에서 헤비게스 할아버지의 그림을 처음 만났을때와 같은 것이어서, 저와 같은 체험을 맞이할 어떤 이가 있다면 의미로울거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전시회를 마친날 저녁, 처음 방명록의 글들을 읽고 늦은 새벽까지 잠이 들지 못했습니다. 신문을 보고 물어물어 찾아오셨다는 분과 기차에서 쓴 깨끗하고 뭉클한 편지를 전해주신 분께 뒤늦은 감사함을 전합니다.
소중한 시간 내어 찾아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저의 어머니를 친철하고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관장님께 감사합니다.
그곳에 가만히 앉아 거리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우리 삶을 귀중히 여기도록 하는 고요한 영감이 마음속에 깃들곤 했습니다.



#보나갤러리 #어머니의그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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