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일기-경숙이

김계희
2022-11-08
조회수 102


2010년


얼마전부터 경숙이에게 전화가 간혹 걸려온다.
경숙이는 대학교때 멋졌던 아이. 바람 같은 아이였다. 경숙이에게는 늘 바람 같은 냄새가 느껴졌다.
처음 경숙이에게 전화가 왔을 때, 서울에서 하는 개인전 도록에 실릴 글을 내가 써 주었으면 했다.
지금쯤이면 좋은 분들께 글을 받을 수 있을 텐데, 10년도 넘게 연락이 두절되었던 내게
그런 부탁을 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는 것을 생각하자 가슴이 따뜻해 졌다.
"네가 나를 잘 아니까. 네가 나에 대해서 써줬으면 좋겠어" 라고 경숙이는 말했다.
내가 너를? 우리는 딱 한번 맥주를 마신 적 있지. 생생한 정신으로, 별로 취하지도 않았던 날.
우린 서로 다른 방향의 그림을 그렸었지만, 한번도 둘이 제대로 밥을 먹거나 술을 진탕 마시거나
속내 깊은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었지만, 나는 그냥 알 것 같았다. 왠지, 경숙이를.
나도 경숙이도 붙어 다니길 별로 좋아하는 성향이 아니어서, 저는 저대로, 나는 나대로 다녔고,
그래서 대학 때 그리 특별한 추억도 없었다.
그런데 십년도 넘게 흐른 어느 봄날 오후에 경숙이에게 전화가 온 거였다. "네가 나를 잘 아니까."

경숙이를 좋아했다. 좋아했다기 보다 그냥 경숙이라는 아이 자체가 좋은 사람이었던 같다.
다들 경숙이를 좋은 사람으로 기억할거라고 생각한다.
대학 1학년때 내가 교정을 걸어 가고 있을 때 경숙이가 다가와 물었다.
"어디가?" 그때가 처음 경숙이와 말을 한 때였다. 그때가 오유월 쯤이었으니 대학 새내기때 였다.
대부분의 20대가 그렇듯이 딱히 어디를 가고 있지를 않아서,
눈앞에 도서관이 보여서 나는 "도서관" 이라고 대답했다.
"나도 같이 가."
도서관으로 가면서 경숙이가 말했다.
"난 너랑 이야기가 하고 싶었어."
어라, 도시 아이들은 이렇게 노골적으로 속내를 말하나? 라고 생각했다. 내 정서와는 좀 맞지 않는군.
우리는 처음 대학 도서관이라는 데를 가서 도서 두 권을 점퍼안에 넣어서 나오다가 걸렸고,
나랑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경숙이와 내가 그날 한 이야기는,
어디가? 도서관. 나도 같이가, 그래 뭐, 너랑 이야기가 하고 싶었어. 가 다였다.

그로부터 10년이 넘게 소식을 모르던 전화에 나는 대답했다.
"알겠어, 그럼 네 이야기를 해봐."
"네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어렸을 때..."로 시작된 경숙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대충 알고는 있었어. 그러니 그냥 편히 생각해."
"네가 어떻게 그걸 알아?"
"그냥 아는 거지, 그게 뭐 중요해? 그래서 네가 나한테 글을 써 달라는 거 아니었어?"

어제는 경숙이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열일곱점의 그림 중에서 열점이 팔렸으니 좋은 결과여서 나는 기분이 좋았다.
"네가 쓴 글 보고 정말 놀랐어. 네가 그것들을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어."
"그게 뭐 중요해? 네가 너에 대해 글을 써 달라며."

나는 그냥 경숙이를 좋아해. 그냥 좋아하게 되었어. 경숙이가 아무것도 모른 채 나를 좋아하게 되었던 것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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