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김계희
2025-01-02
조회수 101


2024.12.6


아버지, 이제야 저는 이해가 돼요.
아버지에게 엄마는 아내가 아니라 당신의 엄마였던 거죠.
사변 때 부모님을 잃고 당신은 열다섯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동생들을 돌보며 오로지 혼자서 일어서고 살아야 했어요.
그런 당신에게 나의 사랑 깊은 엄마는, 당신의 아내가 아니라 당신의 엄마가 되어야 했던 거예요.
그래서 당신은 엄마에게 짜증을 내고 화를 냈던 거예요.
당신의 엄마와 그런 시간을 보내지 못해서, 당신에게 그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던 거예요.
엄마에게 짜증을 내고 화를 내는 나와 똑같이,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엄마'가 필요했던 거예요.
아버지가 기억을 잃었을 때, 그래서 아버지는 엄마를 찾아 집을 나섰던 거죠.
그걸 알지 못해 나는 엄마를 보내드릴 수가 없었어요.
엄마의 마음 속엔 늘 당신이 있었지만, 내가 그럴 수가 없어서, 두 분께 너무나 죄송해요.
우리의 삶은 딜레마였고, 그래서 후회라는 말을 할 수는 없지만, 가슴이 아프고 죄송해요.


당신과 제가 친구로 혹은 형제로 만났으면 우리는 얼마나 멋졌을까 생각해요.
당신이 낳은 자식들은, 나의 형제들은 참 멋져요.
그들은 정말 많은 걸 이해하고 있고, 나의 절망을 도와주려 애썼죠.
내가 도움을 청했더라면, 아버지도 나를 도우려 애썼을지 몰라요.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 닮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죠.
 

아버지, 나는 정말, 정말 무언가 다른 것이 되려나 봐요.
아버지 때문에 나는 다른 것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가슴에 북받치는 눈물을 쏟을 때면 한번도 간 적 없는 곳에 닿고 있는 것 같아요.
지상과 천상이 연결된 그런 곳, 아버지는 그곳에서 제게 계속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건 우리가 지상에 오기 전 나누었던 약속, 우리의 계획들 같아요.
아버지는 제가 그걸 알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아요.
언제부턴가 늘 그걸 느꼈어요. 제가 알게 될 거라는 걸 느꼈어요.
우리는 이렇게 멀리 있지만, 다시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육신의 시간이 아닌 곳에서, 우리는 이미 거기에 도달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면 나를 휘감는 감정들과 눈물은 사라지고 아주 먼 나라에서 오는 소리 같은 걸 들어요.

 

아버지의 얼굴이 보여요. 아버지는 저 먼 세상으로 날아가며 나를 바라보고 있어요. 
아버지의 표정은 이제 지상의 것이 아닌 것, 완전하고 높은 것처럼 보여요.
지상에서 가장 큰 고통을 준 이가 영혼의 세계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는 영혼이었다는 말을 

나는 이제 이해하고 있어요.
우리는 다음 생애서 또 다시 만나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져요.
어떤 관계로 만날지는 아직 모르고 있지만 우리는 다시 의논하려 하고 있어요.
아...당신과 나는 하얗게 빛나고 있어요. 우리는 그곳에서 굉장히 좋은 관계였던 것 같아요.
나는 당신보다 아주 작은 영혼, 나는 아기처럼 작고, 아이가 아버지를 바라보듯 당신을 올려다 보고 있어요.
당신은 평화롭고 자애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어요. 우리는 말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무엇을 하려는 건지 알고 있어요. 


연결...우리가 너무나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게 느껴져요.
나는 당신을 아주 좋아하고 있고, 당신처럼 큰 영혼이 되고 싶어 하고 있어요.
당신은 내가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하고 있어요.
당신은 정말 높고 멋져 보이고, 당신이 하는 말을 나는 맑은 눈을 빛내며 듣고 있어요.
아...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네요.
아...당신은 나의 스승 같아 보여요. 

그곳에서 당신은 나의 아버지, 나의 스승이었어요...!
그런데 당신은 평범하지 않은 아버지의 상(狀)으로 나와 만나려고 하고 있어요. 그래서 나에게 그걸 겪게 했어요.
우리는 이 많은 것들을 이미 다 알고 있었고, 이 딜레마를 통해 고통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우리의 눈물은 이렇게 눈이 부시고, 소중하고, 우리 삶에 너무도 필요한 것이었어요.

아버지, 나는 정말 무언가 다른 것이 되려나 봐요. 다른 것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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