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준비된 세계 1

김계희
2023-09-20
조회수 57


이 메세지는 2015년 여름, 파리서 돌아온 후 며칠간 적어 내려간 메시지다. 개인적인 내용이지만,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을 듯하여 몇 부분을 제외하고 적어 본다. 이것이 신으로부터 온 것인지 나의 영혼 혹은 최상위 자아로부터 온 것인지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글을 통해 우리의 간절함에 대한 답은 어떤 통로를 통해서든 오고 있음을, 자각하는 신성을 통해 해답을 발견할 수 있음을 전하고 싶다. 이 메세지 이후 사사로운 것에서부터 큰 것에 이르기까지 하나씩 내 삶을 해석하기 시작했고, 그 해석은 내 삶 전체를 관통하며 현재가 어떻게 창조되었는지 인식하도록 해주었다.

 

이 메시지를 받기까지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2015년 봄, 나에게는 어떤 개인적인 상황이 생겼고, 언니는 문득 나에게 말했다.
"파리에 가“
그때 문득, 정말이지 달력 속에 쓴 문장처럼 어떤 생각 하나가 나뭇잎처럼 가볍게 찾아 들었다.
‘그래, 파리로 가야지. 파리로 가야 해.’
오래전에도 파리를 가본 적이 있었지만 나에게는 파리에 대한 특별한 이모션이 없었다. 그런데도 당위처럼 그 생각 하나가 찾아 든 것이다.
‘그래, 파리에 가야 해.’


어머니와 크로아티아를 여행한 후 어머니를 한국으로 보내드리고 나서 나는 한 달 반 동안 파리에 머물렀다. 어느 날 숙소에 있던 한국인 여행객이 몽쉘미쉘을 가자고 했는데 나는 그러자고 대답하긴 했지만, 그곳이 내키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날 그녀가 몽쉘미쉘 말고 프로방이라는 곳을 가자고 했고 그렇게 해서 들어본 적도 없는 프로방(provin)이라는 곳을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헤비게스 할아버지를 만났고, 그의 작은 아뜰리에에서 그의 그림을 마주하고 커다란 감동에 가슴이 뛰었고, 파리에 머무는 동안 계속 그의 그림이 마음에 맴돌아 그것이 나에게 주는 이상한 예감을 느꼈다.
여행의 끝 무렵 오빠에게 전화해서 몇 달간 프로방에 머물며 헤비게스와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하자 오빠는 기꺼이 반기며 프로방에서 체류할 경비를 보내주겠노라 말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두 달째 파리에 머물고 있던 비비라는 귀여운 아이가 있었는데, 나는 비비와 함께 프로방과 오베르쉬즈우와즈, 밀레의 집을 함께 여행했다. 비비는 정말 함께 여행하기 좋은 친구였고, 나는 프로방에 집을 구할 테니 함께 머물러 달라고 비비에게 부탁했다. 나의 부탁에 응한 비비는 한국으로 돌아갈 비행기를 연기하고 프로방에 집을 구하기 위해 애를 써주었다. 하지만 프로방은 유네스코에 등재된 지역으로 가까운 성 안팎으로는 집을 구할 수가 없었기에 우리는 헤비게스에게 집을 구하는 방법에 대해 도움을 청하기 위해 다시 프로방으로 갔다. 하지만 그날 우리는 헤베게스를 만나지 못했다. 집이 구해지지 않자 비비는 항공편을 더 연기할 수가 없어 한국으로 떠났고, 비비가 떠나던 날 비비를 배웅하고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나는 핸드폰을 소매치기 당했다. 그날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고, 심한 스트레스를 느꼈고,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급격한 피로감에 사로잡힌 나는 일주일 뒤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때의 느낌은 무언가가 나를 한국으로 떠미는 듯한 기분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이틀 전 숙소의 주인이 도움을 주어 헤비게스와 통화를 했고 나는 다시 프로방을 찾았다. 헤비게스와 하루 동안 시간을 보내며 서로 통하지 않는 언어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는 헤비게스의 다수의 그림을 구입해서 돌아왔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이유를 알 수 없는, 마음이 무척 힘든 경험을 했다. 표현하기 쉽지는 않지만 한마디로 말한다면 <내 삶이 부서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왜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인지 이유를 알 수 없었으므로 막막했고, 그 느낌의 근원에 무언가가 있는 것 같은데도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막막하고 막막한 느낌이었다. 그 느낌으로 인해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는데 그 와중에 계속해서 떠오르는 생각은 '기도를 해야겠다. 명상 같은 것을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그 막막함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았기에 무언가 다른 세계를 통해야만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오랫동안 영적인 깊은 훈련을 하신 판화실 회장님께 기도를 하고 싶다고 청했다. 그러자 회장님께서는 나를 구인사로 데려갔고, 나는 삼박 사일 간의 기도에 들어갔다. 나는 기도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지만 명상을 해본 적은 있던 터라 회장님께서 시키시는 데로 모든 사념을 제거한 채 관세음보살을 외치며 삼박 사일 동안 자고 먹는 시간 외에는 나에게 집중했다.


회장님은 굉장히 영적인 분으로 명상 중에 많은 것을 보셨고 기도를 통해 많은 체험을 이루신 분이셨는데, 구인사로 가는 길에 회장님께서 말씀하셨다.
"많은 사람이 나를 통해 이곳에 와서 기도하기를 원했지만 한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어요. 가려고 했던 날이 되면 꼭 무슨 일이 생겨 못 가게 되었거든요. 계희씨가 기도를 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문득 삼일 동안 기도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게 힘든 거라서 응할지 생각했는데 즉시 그러겠다고 대답하더라고요. 이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건 흔치 않은데 이게 예정되어 있던 일인가 봐요."


구인사를 다녀온 일주일 후 핸드폰의 메모장에 내 마음의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조금 쓰다 보니 무언가 전혀 다른 느낌으로 내 마음에서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나는 그것을 따라 적기 시작했다. 나는 원래 글을 빨리 쓰지 못하는 편인데, 그 글은 손이 저절로 움직이다시피 하며 쉼 없이 빠르게 써졌고, 하나의 이야기가 멈추고 나면 몇 분 뒤 다시 이야기가 시작되곤 했다. 그제서야 이것이 어디선가로부터 오는 메시지라는 것을 알았다. 그날 나는 세 편의 메시지를 받아 적었고, 그 후 삼일 동안 메시지는 계속되었다. 오빠는 명상과 수련을 많이 했기 때문에 오빠에게 전화해서 내가 메시지를 받는 것 같다고 말하자 오빠는 계속 자신에게 집중하라고 조언해 주었다. 삼일째 마지막의 문장을 쓰는 순간 메시지가 끝났음을 알았다. 더 이상의 메시지가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고, 이 메시지를 현실에서 실현하는 일이 남았음을 알았다.


이 메시지는 나만 이해할 수 있는 내 삶의 전반을 꿰뚫는 것이었고, 23년 전 화재 사건과 내 어린 시절과 어머니에 관해서도 들어있었으며, 헤비게스와의 만남, 그리고 비비가 급히 한국으로 가게 된 이유도 이야기하고 있었다. 헤비게스와의 체험이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되어있던 체험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2016년도 달력에 이것의 극히 일부를 담았다.
당시 나는 달력을 만들기 위해 그리고 있는 그림들에 대해 심각한 회이감에 빠져 있었다. 나의 그림이 생명력을 잃어 가고 있음을 알았고 하지만 그만둘 수 없었기에 나는 차라리 달력이 팔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마저 가지게 되었다. 달력이 팔리지 않는다면 달력을 만들지 않아도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생각은 매년 점점 커졌고 고객 업체가 하나씩 없어질때면 안타까움 뒤로 차라리 편안한 마음이 한 켠 자리 잡았다. 
기도를 할 때는 정확한 질문을 해야만 정확한 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최근 접하게 되었는데, 당시의 나는 무엇을 질문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할 정도로 혼란스럽고 갑갑하여 숨쉬기조차 힘든 상태였다. 커다란 바위 덩어리가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느낌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내가 외치던 관세음보살 속에는 <내가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에 대한 강력한 질문이 있었던 것 같다.
나의 생애에서 아주 중요한 체험이었고, 그 체험을 통해 나는 조금씩 변화했고, 많은 것들을 해석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지금은 무언가 바닥에 닿은 듯한 맑은 느낌 속에서 내 삶을 새로이 시작하고 싶은 열망 속에 서 있다.

 

파리에 있을 때, 어느 날 숙소의 주인이 나에게 물었다. 
”당신은 파리에 왜 온 건가요?“
나는 여행을 온 거라고 대답했지만 그녀는 말했다.
”내가 보기에 당신은 여행을 온 게 아니에요. 여행을 온 사람은 당신처럼 하지 않아요. 
정오에 일어나 슈퍼마켓에서 몇 개 물건을 사오는 일로 하루를 보내지는 않죠. 게다가 여기는 파리거든요.“

 

지금도 생생히 느껴지는 것은 무언가가 오랫동안 준비해 온 그 세계 속으로 나를 들어가게 했다가 빠져나오게 한 느낌이다. 
그때 나뭇잎처럼 찾아든 생각 하나는 나를 위해 오랫동안 준비된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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