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호랑이 물고기

김계희
2025-06-23
조회수 67


   No One 



나는, 이 고통이 좋아. 오랜 세월을 함께 했고, 이건 나의 것이 되었기 때문이야.
나는, 이 고통이 주는 아득한 감미로움이 좋아. 세상의 눈부신 것들, 그리고 눈물에 반짝이는 것들,
어머니, 아버지, 그들의 사랑과 고통. 그리고 그때 우리의 사건들.
심장에 새겨진 이 슬픔들이 이제는 좋아.
아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내 것이 되어버렸으니, 이런 채 평생을 함께 할 거니, 나는 이것들이 좋아.
때로는 정신이 아득해지고, 그래서 볼 수 없던 것을 보고 들을 수 없던 것을 들을 수 있게 되었더라도,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니, 나는 이게 좋아.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도 좋아. 절름발이를 불러내 보여준 바깥 세상도 좋아.
그때 우리의 동물원은 닫혀 호랑이를 볼 수는 없었지만,
내가 절름발이라서 도망쳤던 기억은
너에게도 길고 무거운 흔적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병들고 아픈 흔적만이 쓸 수 있는 눈부신 동화를, 그런 동화를 쓰게 될 테니.
나는 이제 좋아.

__

부디 우리가 도망쳐 온 모든 것에 축복이 있기를.
우리가 두고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삶의 뒷모습도 많이 누추하지 않기를.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부박함도 시간이 용서하기를.

-이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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