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사진 작가'

김계희
2025-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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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a minor_À Paris le 30 décembre



오랜만에 내 친구 '사진 작가'를 만나 밥을 먹었다. 스캐너를 설치해 주고 맛있는 막창집을 발견했다며 나를 데려가 주었다. 지난 주말에는 경주 남산 칠불암에 올라가 사진을 찍었다고 했다. 그리고 몇 주전에는 부산에 있는 어느 절에 가서 사진을 찍기 위해 또 산을 올랐다고 했다. 그는 전시회를 하지도 않고 사진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지도 않지만 늘 시간이 날 때면 버스를 타고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들춰 메고 사진을 찍으러 다닌다.
엄마가 아팠을 때, 친구는 팔공산 갓바위에 올라가 엄마 이름을 적고 기도를 해 주었다. 숨을 헐떡이며 정상에 다다랐을 때 눈앞에 두꺼비 한 마리가 버티고 앉아 자신을 바라보더라고 했다. 두꺼비를 바라보며 참 신기하다는 생각과 함께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폭염을 뚫고 헉헉거리며 올라간 칠불암 정상에서 바위에 고인 물 위에 개구리 한 마리가 앉아 자신을 바라보고 있더라고 했다. 그래서 또 신기하고 무언가 좋은 기운을 주는 듯해서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그럴때마다 좋은 일이 생긴다고도 했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도 않는 사진을 찍기 위해 그렇게 다니는 게 행복하냐고 물으니 사진을 찍으러 다닐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대답했다. 돈은 부족해도 사진을 찍고 매일 음악을 들을 수 있어 정말 행복하다고, 내가 물을 때면 그는 언제나 진심어린 똑같은 대답을 한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괜히 눈물이 나서 막창을 먹으며 한동안 훌쩍 훌쩍 울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무기력한 하루하루에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이 행복해 하는 삶에 대해서 말하며 내가 작업을 하면서 행복해 하던 모습들을 말해주었다. 그러자 더 눈물이 났다.

그는 사소한 약속도 어긴 적이 없고, 약속 시간에는 늘 이삼십분 전에 와서 기다리고, 말한 것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꾸미는 말, 거짓말 같은 거 하는 적 없는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다. 우리는 연인이었지만 오래전에 친구가 되었고, 그는 내 컴퓨터가 고장나거나 인디자인 크랙이 풀렸을 때 고쳐주기도 하고 가끔 밥을 사주기도 한다.
그는 늘 내가 무심코 지나가면서 했던 말을 기억하고 그것들을 해 주었다. A4지가 떨어져서 프린트를 못하고 있다고 말하면 A4지를 사서 몰래 대문 안에 넣어 주고 돌아갔고, 마우스가 버벅거린다고 하면 마우스를 사서 대문 안에 넣어 주고 돌아갔고, 내가 작업을 하는 시기에는 늘 밥을 사서 대문 안에 넣어 주고 돌아갔다. 작업하는데 방해가 될까 봐, 버스를 타고 돌아가며 밥 챙겨 먹으라고 문자를 했다. 한 시간 가까이 걸리는 곳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내가 사소한 것들 때문에 불편해 하지 않도록 소리 없이 챙겨 주었다. 그를 만나고 돌아오면 몰랐던 사이 더러웠던 핸드폰이 깨끗하게 닦여 있거나, 케이스가 교체되어 있거나, 작업실에 유리가 닦여 있거나, 컴퓨터가 청소되어 있었다.
나처럼 핸드폰을 마구 쓰는 사람을 처음 본다고도 했고, 문자에 답장이 이틀 후에 오는 사람도 처음이라고도 했고, 내가 중요한 것을 까먹을까봐 했던 말을 세번씩 반복하기도 했다. 나처럼 말을 거르지 않고 정직하게(?) 말하는 사람도 처음이라고도 했고, 어느 날 꿈속에서 내가 바람을 피웠는데 내가 정직하게 대답할까봐 차마 묻지 못하고 혼자서 눈물을 흘렸다는 말도 했다.
언젠가 내가 무슨 동물을 닮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내가 개코 원숭이를 닮았다고도 했다.
"개코 원숭이는 잘 놀다가도 갑자기 구경꾼들한테 달려들어 막 화를 내거든요."
나는 욕쟁이는 이유가 있어서 욕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욕을 하고 싶기 때문에 욕을 하는 거라고 이해 시켜주기도 했다.

연인이었던 사람이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은 본질적인 신뢰가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연인으로서 어려운 지점들이 있었을지언정 남녀로서의 감정들이 끝났을 때 남은 뒷모습은 그 사람의 인격이 되고, 그 시간들을 아우르는 태도들은 함께 했던 시간들을 상처 없이 귀한 기억으로 간직할 수 있도록 하니 관계에서 그보다 감사한 것은 없을 것이다.
나는 늘 나보다 좋은 사람이 그에게 나타나 내가 해 줄 수 없는 위로를 그에게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그도 내가 자신보다 나에게 맞는 사람이 나의 곁에서 삶에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몇 해 전 나는 그가 가지고 싶어했던 망원렌즈를 선물했다. 내가 그동안 너무 받은 게 많아서 그가 가장 좋아하는 카메라 도구를 선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껴 써서 모은 돈으로 늘 카메라나 카메라 도구를 사거나, 구하기 어려운 귀한 음반을 사거나, AR스피커를 수집하는 것에 돈을 쓴다. 우리 집을 리모델링 했을 때, 그는 자신이 가진 AR스피커 중 하나를 손수 수리하여 자신이 소장한 빈티지 오디오와 함께 선물해 주었다. 가구 디자인을 전공했기에 손수 나무를 켜서 붙이고 칠을 하고 시장에서 린넨 원단을 사서 붙여 새것처럼 복원했다. 그건 내 장식장과 아름답게 어울리고 소리도 앤틱하게 아름다워서 오디오를 켤 때면 늘 기분 좋은 느낌이 든다.
그의 꿈은 자신의 손으로 벽돌을 하나씩 쌓아 오래 오래 시간을 들여 작업실을 만드는 것이다. 바닥엔 오래된 나무를 깔고, 문을 열고 맨 먼저 바닥에 첫 발이 닿을 때 낡은 집에서 울리는 듯 끼익-하는 마루의 소리가 나는 곳이 그가 짓고 싶은 집의 모습이다. 그곳에는 자신이 모은 카메라와 찍은 사진들이 걸려 있고, 그가 손수 수리한 아름다운 오디오들이 바닥에 놓여 있게 될 것이다.

그는 나를 위로하며 예전처럼 예쁘게 꾸미고 다니라고 말했다. 옷을 사러 다니면서 좋아하던 모습이 보기 좋았다고 말했다. 내 그림을 좋아하고, 그림들을 그냥 내버려두는 게 아깝다고도 말했다. 때로는 내가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 한다고도 말했다. 그리고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나를 여전히 열정적이고 멋진 사람으로 이야기 한다고, 늦지 않았다고, 자신감을 가지라고도 말했다. 그리고 크랙이 풀리면 언제든 연락하라고도 말했다.
집에 돌아오니 그가 행복해 하는 삶이 가슴이 남아 겸손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시간이 날 때면 무거운 가방을 메고 찍은 데를 또 가서 찍고, 또 가서 찍고, 또 가서 찍는다. 아무도 찍지 않는 잊혀져 가는 것, 사라져 가는 것들을 기록한다. 그 기록들은 수십년이 되었고, 나는 그의 사진들이 자신의 역사 뿐 아니라 언젠가는 다른 이들에게도 역사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가 언젠가 그 아름다운 곳에서 보석처럼 아름다운 숨겨온 사진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리고 언젠가가 될 그 소중함을 남겨 두는 삶도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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