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효다

김계희
2025-07-22
조회수 201


후배는 간혹 나를 찾아온다. 후배는 몇 해 전 집이 파산했고, 엄청난 빚더미에 올랐고, 모든 것을 떠안아야 하는 가장이 되었고, 그녀가 나를 찾아온 때는 그녀가 최악이었던 상황이었다. 그녀는 그 즈음 디자인 사무실에 계약직으로 근무를 했는데, 나는 미술 학원을 운영해보는 게 어떠냐고 권했었다. 내가 하는 수업 방식을 배우면 먹고는 살 거라고 말하자, 그녀는 아이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후로 꽃집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수공예품을 만드는 그녀에게 나는 또 한번 학원을 권했다. 그러자 예전과 같은 대답을 했다. 그러더니 그녀가 갑자기 하는 말이,
"저의 꿈은요,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산을 사고 싶어요. 산을 사서 무얼 할 건지는 몰라도 거기에 온갖 종류의 꽃과 나무를 심고 막 그러고 싶어요."
그때, 그녀를 만난지 처음으로 그 말이 내 귀에 아주 크게, 선명하게, 또렷이 들렸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 사람이 정말 산을 사겠구나. 이 사람의 그릇이 학원 선생이 아니구나. 내 밑에 들어올 사람이 아니구나.'

몇 년 후, 그녀는 정부 지원을 받아 농지를 사서 하우스를 만들고 딸기를 재배했다. 출자금이 수억이 되었다. 그리고 첫 수확한 딸기를 나에게 가져다 주었다. 태어나 처음 먹어보는 놀라운 맛의 당도였고 신선함이어서 충격적일 만큼 놀랐다. 나는 그녀에게 핀드혼 농장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가 다시 찾아왔을 때 자신도 놀랄 만큼 작황이 좋은 상태였지만, 여전히 힘겨운 상황이었다.
"하우스를 한 동 더 지어야 하는데 모두 부정적이에요. 그런데 그걸 지어야지 수익이 나서 조금이라도 빚을 갚아 나갈 수가 있거든요. 또 정부 지원을 받았는데 고민이에요. 위험하다고 다들 말려요."
“그들이 성공한 사람들인가요?”
“아니에요.”
“그래서 그 사람들 말을 믿을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을 찾아왔어요.”
"당신은 산을 살 사람이잖아요. 그런 사람이 그런 말을 들으면 안되는 거에요."

그녀는 하우스를 세동 째 지을 때도 찾아왔고, 이번 작황이 좋지 않았던 일주일 전에도 나를 찾아왔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그녀에게 나는 그녀의 지금 상황과 그녀가 어떻게 그 빚을 갚게 되는지 이야기 하며 덧붙였다.
“나는 위로를 잘 못해요. 잘 될 거야,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그런 말을 못해요. 나는 그게 싫거든요. 나는 그런 말을 듣는 걸 원하지 않거든요. 등을 토닥이며 잘 될 거라고 말 해 주는 거, 같이 울어주는 거 나한테는 무의미하게 들리거든요.
내가 원하는 말은, 일어서, 이럴 시간이 없어, 방법을 말해 줄게, 이런 말이거든요."
“저도 그래요. 제가 원하는 건 위로의 말이 아니에요. 그래서 선생님을 찾아오는 거 같아요.”

불이 나고 직업을 잃고 빚더미에 올랐을 때, 나에게 맨 먼저 든 생각은 '방법을 찾자. 이제 어떻게 하면 되지? '라는 생각이었다. 엄마와 함께 보증금 500만원에 월 5만원짜리 월세집으로 이사했을 때, 매년 수천 만원의 빚이 늘어 가면서도 나는 그러한 일로 단 한 순간도 나를 측은해 한 적이 없다.
제본 사고로 선적을 하지 못하여 한 시간 차이로 수 천 만원의 계약이 무효가 될 시점에도 '방법을 찾자. 이제 어떻게 하면 되지?'라고 생각했다. 나는 기계에 달려들어 매달렸고 수 십 년간 그 일에 종사하던 사람도 찾지 못했던 해결책을 찾아 물건을 배에 실을 수 있었다.
어머니가 기억을 읽었을 때 하루를 울고 난 새벽 “엄마는 내가 살린다. 이제 방법을 찾자"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 년간 나는 어머니에게 매달렸고 어머니는 놀라울 정도로 많이 회복되었다.
내 아버지가 그랬고, 그래서 나는 한번도 아버지에게서 부정적인 말을 들어 본 적이 없고, 그래서 요 근래 나를 좌절시키는 상황에서 벗어나 다시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 무얼 하면 되지? 방법을 찾자.'

오늘 그녀는 경주에서 차를 타고 나에게 복숭아를 가져다 주었다. 맛있는 복숭아를 먹고 그녀에게 고마움의 문자를 전했다.

<전쟁을 앞둔 엘리자베스 1세는 점성술가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영국이 전쟁에 이길 것인지 질 것인지 조바심 내며 묻습니다. 
그때까지 여왕은 두려움에 떨고 조바심을 가진 작은 인간의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그러자 점성술가는 말합니다.
"그것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합니다. 

큰 위기에 부딪혔을 때 어떤 사람은 두려움에 떨지만, 
어떤 사람은 두려움을 떨치고 독수리처럼 거대하게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여왕의 얼굴은 놀라운 해답을 찾은 것처럼 

용기와 환희에 찬 표정으로 변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전쟁에서 승리합니다.

영화 사무라이에서는 늘 전쟁에 승리하는 주인공에게 한 사람이 묻습니다.
"당신은 정말 두려움이 없는 용감한 사람입니다."
그러자 그가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저는 언제나 늘 두려웠습니다."

내가 늘 기억했던 이야기, 그래서 내가 나에게 최근에 했던 부정적인 모든 말은 무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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