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킬께

김계희
2025-12-11
조회수 236


작성일 2023.10.23


달력에 쓸 그림이 충분한데도, 엄마가 다시 그림을 그리게 하려고 달력 그림이 모자란다고 말하니, 아프고 난 엄마가 처음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선이 삐뚤삐뚤하게 나온다고 자를 대고 그리는 거였다. 자를 뺏어 감추자, 어느새 붓대를 종이에 대고 똑바로 선을 그리고 있었다. 열 번을 말해도 듣지 않았다. 


진도는 나가지 못했지만, 엄마는 나흘 동안 몇 시간씩 책상에 앉아 있었다. 어떤 날은 내가 수업하러 갈 때 그림을 시작한 엄마는 내가 수업을 마치고 올때 까지 책상 앞에 앉아 있었지만, 거의 몇 개의 선도 그리지 못하고 있었다. 뇌졸중 후에 그림을 그리는 것도 둔해진 것은 분명했지만, 그것 때문에 그리지 못한 게 아니었다. 며칠간 내가 알게 된 것은, 엄마는 집요한 의지로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잘 그리지 못할까 봐 두려워했고, 그래서 주저했고, 예전 같은 편안함이 나오지 않았다. 목적을 가진 그림이 이 작은 노인에게도 해당되었으니 나는 무서워졌고, 그래서 엄마에게 안 그려도 된다고 말하며 그리기를 중단시켰다. 


언젠가, 갑자기 캔버스 작업을 너무 하고 싶어서 새벽에 작업실에 나가서 신나게 그림을 그렸는데, 다음날 선배가 와서 그림을 보더니 그림들이 아깝다며 전시회를 하라고 했다. 이튿날도 어느 선생님이 오셔서 같은 말씀을 하셨다.
문득, '전시회를 해볼까?' 생각이 들어서, 그날 저녁 그림을 그렸는데, 목적이 생기니 그림이 신나지 않았다. 갑자기 잘 그리고 싶어지고, 그러니 힘이 들어가고, 생각을 하게 되고, 결국 그래서 붓을 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과거에, 나를 병들게 하던 그림들을 알고 있어서, 그런 그림은 더는 안 그릴 거라고 스물아홉 살 때 마음 먹었다. 그때 첫 개인전을  한 달 앞두고 전시를 취소했다. 일 년을 준비한 전시였지만, 병든 그림을 전시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그림은 일기장에나 끼워둬야 할 거라고 생각했다. 


오 년 만에 경숙이를 만났다. 경숙이는 그림이 많이 팔리는 유명 작가가 되었지만, 건강이 좋지 않았다. 그림이 우리 삶에 독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나누며 나는 경숙이에게 단식을 권했고, 오늘은 경숙이가 단식을 한지 칠 일째가 되었다. 내가 권한 단식 책을 완독했고, 나의 코칭에 철저히 따라주고 긍정적인 피드를 주어 보람되었다. 


철호 선생님은 내가 다시 그림을 그리기를 바라고,  전시를 하지 않는다고 늘 아쉬워하신다.  십 년 넘게 같은 말씀을 나에게 하셨는데, 이제는 조금 지친 기색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도 그림이 신나지 않는다. 신날 때가 되면 자꾸 다른 마음이 생긴다. 그 마음이 생길 때면 그게 독이 되는 것을 느낀다. 영혼을 갉아먹는 경험들. . . 그런 건 안 해도 되서, 엄마는 내가 잘 지키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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