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일지-디피 2일차

김계희
2026-07-09
조회수 74



아침에 일어나 작업실의 책상을 전시장으로 옮겼다. 작업실을 이사할 때 파크베르시 주인분이 직접 만들어 주신 책상이다. 나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 앉아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내가 가장 아끼는 물건 중 하나다. 익숙한 책상이 들어오자 낯선 전시 공간도 조금 더 편안해졌다.

현우 어머니와 수인이 어머니가 오셨을 때 나는 바닥에 흐트러진 습작들을 그대로 둔 채, 처음부터 하려고 마음먹었던 판화 작업들을 펼쳐놓고 있었다.
“쌤! 오픈 2분 전인데 뭐 하고 계세요?!”
어머니들은 자연스럽게 판화를 늘어놓는 일을 도와주시기 시작했다. 한 시간쯤 지나 온유와 온유 어머니가 오셨다. 온유는 바닥에 널린 습작들을 분류하며 말했다.
“이 광경은 쌤의 ADHD와 파크베르시의 확장판이네요!”


뒤이어 채온 작가님이 오셔서 남은 액자들을 벽에 걸어주셨다. 아이들은 전시장 안을 빙빙 돌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디피는 관객들이 함께 만드는 퍼포먼스가 되어가고 있었다. 삼십년만에 처음 얼굴을 뵙는 독자분과, 익숙한 따뜻한 얼굴들과, 오래된 그림들을 펼쳐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제의 고단함은 어느새 위로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원래 정리를 잘 못한다. 작업이 한창일 때면 내 방은 늘 폭탄을 맞은 듯 어지러웠고, 때로는 그 풍경이 아름다워 보여 사진을 찍어두곤 했다. 어제도 디피를 하며 그림들이 널려 있는 광경이 나는 오히려 보기 좋았다. 흩어진 그림들 사이로 문득문득  퍼덕이던 어릴적 선들이 회상으로 다가오던 순간이 좋았다.  


서랍 가득 들어 있던 그림들 중 두 칸을 전시장으로 가져왔다. 어떤 그림이 들어 있는지도 그제야 처음 보는 것들이 많았다. 어차피 집에서도 정리하지 못했을 것들이다. 그런 내가 하루 만에 전시장을 말끔히 정리해 보여주기는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널브러진 종이들을 매일 다시 늘어놓고, 자리를 바꾸고 비워가는 행위 자체가 어쩌면 '미완의 말들'을 시각화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관람객들이 내가 지나온 시간을 오늘 어떻게 마주하고 다시 정리해 가는지, 그 흔적을 함께 목격한다면 참 좋은 일 일것이다. 


벽 위의 가지런한 액자들은 '보여주는 말'을 골라내던 내 모습이다. 그 말들은 '친절함'이자 독자를 향해 갖추어야 할 정성된 태도이고, 조화로움을 갖추기 위해 애써온 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바닥은 나의 오랜 은신처, 말들이 비뚤어지고 흐트러져 있는 방. 모든 문장을 비껴 말해도 알아듣는 방. 모든 말이 은유가 되어 나를 보호해 주던 방이다.
이 두 세계는 종종 내 안에서 충돌했지만, 그 충돌 속에서 나는 조금씩 조화로움을 배워왔다. 


오후가 되자, 중요한 것은 디피의 완성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수년 만에 내 그림들을 다시 들춰보며, 삶의 많은 부분을 그림이라는 은유로 감싸 안고 살아온 시간을 마주하고 있었고, 삶에 관해 생각하고 있었다. 계획이 무너짐으로써 오히려 이번 전시의 본질에 닿은 것이 있다면 그 점일 것이다. 

그래서 이것들은, 이대로 완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밤 열 시에 현우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어디세요?”
“집인데?”

“아까 엄마가 쌤 디피 덜 됐다고 도와주러 가야 한대서 지금 봉산동 왔는데 불 꺼져 있네요?”
“일곱 시에 문 닫는데 열 시에 거길 왜 가! 너희들은 왜 맨날 묻지도 않고 깜짝쇼를 하고 난리야?!”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의리를 품은 어머니들과, 앞뒤 재지 않고 벌이는 깜짝쇼들과, 문 닫힌 미술관과, 미완으로 끝난 스무살 소년의 성의와, 현우와 밤 열 시는,  완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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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우와밤열시 #김계희개인전 #미완의말들 #봉산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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