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성탄 파티가 끝났다. 청소를 하고 돌아오니 새벽 세시가 넘었다. 나흘 동안 여섯 시간을 잤고, 아이들은 즐겁게 놀았고, 몇 달간 이어지던 바쁜 일들이 모두 끝나는 날은 늘 그렇듯이 돌아오는 길이 쓸쓸했다. 방이 추워서 보니 새로 바꾼 보일러를 엄마가 작동시키지 못해 이상한 걸 눌러 놓았다. 엄마 방에 들어가 매트에 전기를 켜는데 깜짝 놀라며 깨어난 엄마가 잠결에 한참 무슨 말을 했다. 꿈꾼 이야기를 하는 건지,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하는 건지, 아니면 내가 알 수 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를 하는 건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어 왈칵 눈물이 났다.
며칠전엔 엄마와 병원에 가서 약을 타고, 보청기 소리를 조절하고, 아이들 선물을 사러 핫트랙에 갔다. 교보에서 지하로 내려 가려는데 엄마가 책들을 두리번거리며 보고 있어서 사고 싶은 책이 있느냐고 물으니 그냥 보고 있는 거라고 했다. 엄마는 글씨를 읽으면 머리가 아파 글씨를 읽지 않으려고 한다. 오빠가 다카코 언니를 만나고 있을 때, 엄마는 나 몰래 교보문고에 가서 일본어 회화책을 사와서 몰래 공부를 했다. 나중에 다카코 언니와 대화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즈음 엄마는 내가 사주지 않았던 '시크릿 러브'라는 노래가 담긴 음반을 사기 위해 핫트랙을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찾아가기도 했다. 그때도 나는 엄마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게 불과 십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제 엄마는 TV의 소리를 듣지도 못하고 자막도 읽지 못해 엄마의 TV는 꺼져 있고, 사람들은 이제 엄마에게 전화를 거의 하지 않는다. 하모니카를 배우고 싶어해서 코로나가 끝나면 등록해 주려고 했었는데, 이제는 못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아졌다.
청각 진단하는 선생님께서 엄마의 귀가 더 나빠져서 소리가 더 안들리는 게 아니라 인지 기능이 떨어져서 말을 제대로 해독하지 못하는 거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왈칵 눈물을 쏟았다. 서점의 책들을 바라보는 엄마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많이 아팠다. 그렇게 머리가 좋고 똑똑하던 엄마가 최근 내 말을 너무 알아듣지 못한다. 청각을 잃으면 인지 기능이 더 떨어지기에 귀를 좋게 하려고 지압을 해주고 있었는데, 선생님의 말처럼 청각의 문제가 아니라 인지의 문제라는 것을 알고서 너무 가슴이 아팠다. 엄마는 단순한 말을 해석하는데도 이제 시간이 걸린다. 이해하는 게 힘드니 안 들으려고 하고, 이해시키는 게 힘드니 나도 말을 안 하게 되고, 그래서 자주 가슴이 저민다.
엄마는 자주, 모든 걸 금새 금새 까먹는다고, 왜 아직도 정신이 돌아오지 않는 건지 묻는다. 그러면 나는 걷기를 더 오래하고 야채 주스를 빼지 않고 마셔야지 좋아진다고 대답한다. 정말 많은 것을 해주고 싶었는데, 하기도 전에 끝이 났다. 못다한 것들이 너무나 많아 가슴이 저민다.
선생님은 하루에 몇 줄이라도 일기를 쓰게 하는 게 좋다고 말씀하시며 휴지를 건네며 친절하게 위로를 해주셨다. "항상 따뜻하게 말을 건네고 늘 안도감을 느끼게 하세요. 그렇게 하면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행복하게 지낼 수도 있어요. 저의 고모 할머니도 행복하게 지내다가 떠나셨어요."
모든 것에는 슬픔이, 소중하고 귀하고 사랑해서 슬픔이 있는 거지? 오늘 밤, 선생님의 말은 참 위로가 되고, 지금은 잠들어 있지만 엄마는 아침에 깨어날 거고, 나는 엄마에게 따뜻한 말들을 건낼 거고, 지금의 눈물은 내일 우리에게 따뜻함이 되겠지.
2024.12.23.새벽 6시
아이들의 성탄 파티가 끝났다. 청소를 하고 돌아오니 새벽 세시가 넘었다. 나흘 동안 여섯 시간을 잤고, 아이들은 즐겁게 놀았고, 몇 달간 이어지던 바쁜 일들이 모두 끝나는 날은 늘 그렇듯이 돌아오는 길이 쓸쓸했다. 방이 추워서 보니 새로 바꾼 보일러를 엄마가 작동시키지 못해 이상한 걸 눌러 놓았다. 엄마 방에 들어가 매트에 전기를 켜는데 깜짝 놀라며 깨어난 엄마가 잠결에 한참 무슨 말을 했다. 꿈꾼 이야기를 하는 건지,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하는 건지, 아니면 내가 알 수 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를 하는 건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어 왈칵 눈물이 났다.
며칠전엔 엄마와 병원에 가서 약을 타고, 보청기 소리를 조절하고, 아이들 선물을 사러 핫트랙에 갔다. 교보에서 지하로 내려 가려는데 엄마가 책들을 두리번거리며 보고 있어서 사고 싶은 책이 있느냐고 물으니 그냥 보고 있는 거라고 했다. 엄마는 글씨를 읽으면 머리가 아파 글씨를 읽지 않으려고 한다. 오빠가 다카코 언니를 만나고 있을 때, 엄마는 나 몰래 교보문고에 가서 일본어 회화책을 사와서 몰래 공부를 했다. 나중에 다카코 언니와 대화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즈음 엄마는 내가 사주지 않았던 '시크릿 러브'라는 노래가 담긴 음반을 사기 위해 핫트랙을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찾아가기도 했다.
그때도 나는 엄마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게 불과 십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제 엄마는 TV의 소리를 듣지도 못하고 자막도 읽지 못해 엄마의 TV는 꺼져 있고, 사람들은 이제 엄마에게 전화를 거의 하지 않는다.
하모니카를 배우고 싶어해서 코로나가 끝나면 등록해 주려고 했었는데, 이제는 못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아졌다.
청각 진단하는 선생님께서 엄마의 귀가 더 나빠져서 소리가 더 안들리는 게 아니라 인지 기능이 떨어져서 말을 제대로 해독하지 못하는 거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왈칵 눈물을 쏟았다.
서점의 책들을 바라보는 엄마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많이 아팠다. 그렇게 머리가 좋고 똑똑하던 엄마가 최근 내 말을 너무 알아듣지 못한다. 청각을 잃으면 인지 기능이 더 떨어지기에 귀를 좋게 하려고 지압을 해주고 있었는데, 선생님의 말처럼 청각의 문제가 아니라 인지의 문제라는 것을 알고서 너무 가슴이 아팠다. 엄마는 단순한 말을 해석하는데도 이제 시간이 걸린다. 이해하는 게 힘드니 안 들으려고 하고, 이해시키는 게 힘드니 나도 말을 안 하게 되고, 그래서 자주 가슴이 저민다.
엄마는 자주, 모든 걸 금새 금새 까먹는다고, 왜 아직도 정신이 돌아오지 않는 건지 묻는다. 그러면 나는 걷기를 더 오래하고 야채 주스를 빼지 않고 마셔야지 좋아진다고 대답한다.
정말 많은 것을 해주고 싶었는데, 하기도 전에 끝이 났다. 못다한 것들이 너무나 많아 가슴이 저민다.
선생님은 하루에 몇 줄이라도 일기를 쓰게 하는 게 좋다고 말씀하시며 휴지를 건네며 친절하게 위로를 해주셨다.
"항상 따뜻하게 말을 건네고 늘 안도감을 느끼게 하세요. 그렇게 하면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행복하게 지낼 수도 있어요. 저의 고모 할머니도 행복하게 지내다가 떠나셨어요."
모든 것에는 슬픔이, 소중하고 귀하고 사랑해서 슬픔이 있는 거지?
오늘 밤, 선생님의 말은 참 위로가 되고, 지금은 잠들어 있지만 엄마는 아침에 깨어날 거고, 나는 엄마에게 따뜻한 말들을 건낼 거고, 지금의 눈물은 내일 우리에게 따뜻함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