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다녀와서

김계희
2017-11-29 15:14
조회수 149

작성일 2015.5


한달 반의 여행을 마치고 며칠 전 돌아왔다. 어머니와 크로아티아를 열이틀 여행하고 나머지는 혼자서 파리에 머물며 미술관과 파리 근교를 여행했다. 여행을 하는 동안 언니와 오빠가 있을만큼 있다가 돌아오라며 돈을 보내왔다. 언니는 나보다 열한살이 많지만 일본과 파리가 유일한 해외 여행이다. 형제자매들은 모두 예술적인 취향을 많이 가졌지만 이 계통에 종사하는 사람은 나 하나다. 그들은 나의 자유를 이해해 주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 계속 살수 있기를 도와주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래서 혼자서 이 아름다운 풍경들을 보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사치스럽게 느껴져서 죄스러웠다.


엄마와 자유여행으로 떠난 시간은 뜻깊었다. 매년 가까운 곳을 함께 여행했는데 이제 연로하여서 장시간 비행이 힘들것 같아 미루어 왔던 유럽여행을 떠났다. 엄마는 지금까지 가본 곳 중 유럽이 가장 좋다고 하셔서 보람되었다. 엄마는 나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혼자서 여행을 가서 멋진 풍경을 볼때면 늘 엄마 생각이 났다. 나는 앞으로 세계의 이곳저곳을 다 여행할텐데 그럴때면 엄마가 얼마나 사무칠까 하는 생각에 엄마가 돌아가시면 후회하지 않으려고, 비교적 자유여행이 수월할것 같은 크로아티아로 정했다.
크로아티아를 여행하고 파리 공항으로 돌아와 엄마를 보냈다. 연로하신 엄마가 지하철로 도시를 다니는 것이 힘들것 같아 그렇게 하였는데 파리 근교의 오베르 쉬즈 우와즈나 모네의 정원이 있는 지베르니, 중세시대의 마을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프로방은 크로아티아보다 더 아름답고 매혹적이어서 엄마를 일찍 보낸게 내내 후회스러웠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대부분이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오거나 회사생활 십년만에 처음 이주간의 휴가를 얻어 떠나온 여자여행객들이었다.
그들은 말하곤 했다.
"언니, 난 파리의 지저분한 계단마저 아름다워요."
"또 해가 져요. 너무 슬퍼요. 이제 팔일이 남았어요."
"오개월 동안 매일매일 이 여행을 꿈꾸며 살았어요."
그들에겐 하루 하루가, 한시간 한시간이 얼마나 귀중하고 애틋한지, 그래서 나는 또 부끄럽고 죄스러웠다. 이 여유로움이, 느긋한 해질녘이, 나는 어떻게 이런 호사스런 시간을 누리며 살고 있는지 죄스러웠다.


스물다섯살때 처음으로 유럽을 베낭으로 다녔다. 암스텔담에서 고흐를 처음 보았고 그림이 감동을 준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수련에 일렁이는 햇살이, 모네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도 처음 알았다. 로뎅이 왜 위대한 조각가인지, 살아서 움직일것 같은 손을 보고 처음 알았다.
그 후로는 늘 동행이 있어서 혼자서 떠나는 여행이 두려웠다. 그런데 엄마와의 여행을 계획하면서 다시 그때의 베낭여행이 떠올랐다. 길을 잃고 헤메던 기억과 한시간 동안 나를 데리고 집을 찾아주던 어느 독일인 부인과 아우토반을 달리던 길에 펼쳐진 해바라기와 그렇게 당도한 콜마르라는 작은 마을의 교회와 교회의 종소리...
그때 그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면 이번 여행이 나에게 이만큼의 서정을 주지 못했을것 같다.
매년 많은 나라를 여행했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더욱 여행다운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대학시절 두류공원에서 점을 보던 할아버지 말이 생각난다.
"학생은 나중에 세상을 많이 보며 돌아다니겠어."
혼자서 아득한 시간들을 견뎌야 한다면 여행을 하면서 우리는 꿈을 꾸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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