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김계희
2017-11-29
조회수 350

작성일 2015.6



대학을 졸업하던 해, 처음 헝가리에 갔다. 부다페스트 소녀의 죽음이라는 시 때문이었다. 프라하의 봄 때문에 프라하에 갔고, 전혜린 때문에 뮌헨을 여행했다.
나는 히말라야가 동물의 이름인 줄 알았다. 그게 아니란걸 중학교 때 알았다. 누군가 "히말라야에 가지 않을래?"라고 이야기 했을 때, 내 마음 속에 깃든 풍경은 산이 아니라 평원을 달리던 히말라야라는 동물이었다. 여행이란 무언가가 시적이미지로 가슴에 아로새겨지는 순간 시작되고 그 길로 오르는 것은 피할 수 없게 된다.



영화 <투와이스 본>의 먹먹한 감동은 아직도 잊히질 않는다. 보스니아 여정은 그 영화 때문이었다.어머니와의 동행이 아니었다면 사라예보로 들어가 보스니아를 제대로 여행한 후 두보르닉으로 갔을 것이다.90년대 초 내전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 이곳의 거리는 건조하고 황량하고 곳곳엔 쓰레가 더미가 가득하다.



건조한 도시의 묘지 앞에는 노인들이 기나긴 한낮을 채우기 위해 무료하게 장기를 두고 있다. 대부분이 한두 명의 가족이나 친척을 잃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장기 한판을 이기기 위해 애쓸 것이다. 삶이 그럴 것이다



아무도 살지 않을 것 같은 파괴된 집에도 빨래가 걸려있고 창안으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여행중에 네팔의 지진소식을 들었다. 신은 인간이 얼마나 많은 것을 견딜 수 있는지를 알게 하기 위해 고통을 내려주시는 것 같다.



낡은 거리를 걸으며 파괴된 건물을 매만지고 있는 것을 보노라니 영화 <그리고 삶은 계속 된다>가 떠오른다. 지진으로 폐허가 된 마을에서 65명의 친척을 잃고도 결혼식을 올리는 신혼부부, 여동생과 조카 셋을 한꺼번에 잃고도 월드컵을 보기 위해 난민촌에 안테나를 세우는 청년, 절망과 좌절 속에서도 삶이란 여전히 그렇게 경이로운 것일까...



보스니아의 자수는 아름답다. 가게를 둘러본 후 조금 있다가 다시 오겠다고 하니 안타까워 하던 표정이 마음에 남았다. 돌아오는 길 다시 가게에 들러 300유로치의 자수를 샀다. 사라예보에서 여섯명의 여인들이 매일 자수를 짜서 이곳으로 보낸다고 한다. 턱없이 싼 가격의 자수들을 한가방 가득 넣어들고 나오자니 그들의 노동을 헐값으로 누리는 것 같아 무언가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주인은 내가 그날 산 자수들이 몇달동안 최고로 많이 판 것이라며 기뻐하며 나를 안아주었다.





Gurdjieff tsabropoulos - pr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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