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길의 작은 양

김계희
2017-11-29 15:23
조회수 172

작성일 2015.6



파리에서 기차로 한시간, 중세의 건물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프로방은 아름다운 곳이다.
그곳에서 헤비게스 할아버지를 만났다. 성으로 오르는 길 하늘색 대문의 아틀리에에 들어서는 순간, 그의 천진하고도 순수한 그림에 가슴이 뛰어 어찌할바를 몰랐다. 한눈에도 그가 그림을 한번도 배운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너무나 예쁜 빈티지 액자에 담겨있는 그림에는 10유로에서 100유로의 말도 안되는 가격들이 적혀있었고, 나는 캔버스에 그린 풍경화를 포함한 6점의 그림을 200유로에 구입했다.

헤비게스는 "작은 길의 작은양"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인데, 45살부터 그림을 시작해 지금은 60세가 되었다. 어릴적 엄마를따라 미술관에 다니는걸 좋아했는데 고흐를 좋아해서 고흐의 그림을 따라 그린것도 있었다. 기법도 너무 자유롭고 다양했는데, 그럼에도 일관되게 느껴지는 할아버지의 색깔이 있었다. 그림을 너무나 사랑하는게 느껴지는, 그림 하나하나가 다 너무나 천진하고 자유롭고 아름다워 한시간 반을 머물며 구경을 했다. 그는 내가 건내준 100유로 지폐를 집어들며 말했다.
"나는 45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지금은 60세가 되었어요. 이 돈은 지금까지 내가 그림으로 받은 가장 큰 돈이랍니다." 그리고선 따뜻하게 나를 포옹했다.

파리로 돌아가 머무는 동안 그의 그림이 내내 마음에 맴돌아 비행기를 다시 연기했다. 프로방에 집을 얻어 두세달 머물면서 그의 곁에서 함께 그림을 그림을 그리려는 계확을 세우고 비비에게 함께 머물러 줄것을 부탁했다. 비비와 함께 집을 알아봤지만 그곳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록된 곳이라 집을 얻기가 만만치 않았고, 우리는 헤비게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다시 프로방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의 화실은 닫혀 있었고, 거처가 모호해지자 더이상 비행기를 연기할수 없던 비비는 며칠 수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비비가 떠나던 날 나는 핸드폰을 잃어버리고 심신이 피로해져 돌아오는 일정을 앞당겼다.

돌아오기 이틀 전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해 약속을 잡았다. 새로 옮긴 거처에서 프로방까지는 세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내가 도착하자 진지한 눈으로 나에게 의자를 건내며 앉으라고 말했다. 나는 지난주에 아뜰리에를 다시 찾았던 일과, 당신과 함께 그림을 그리기 위해 프로방에서 집을 구하려던 일, 한국의 친구들이 당신의 그림을 매우 사랑하며 찬사를 보냈고, 당신의 그림이 내내 마음에 맴돌았노라고, 그리고 당신과 함께 그림을 그리는 시간들을 꿈꾸었노라고, 그리고 떠나기 전 그림을 한번 더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내가 그림들을 펼쳐보는 동안 영어로 자신의 그림 하나하나를 모두 설명을 해주었고, 나는 그중 거의 대부분을 알아듣지 못했다. "나는 영어를 잘하지 못합니다."라고 말하자 그는 "나는 한국말을 못해요. "라고 말했다. 그 또한 나의 짧은 영어를 알아듣지 못했지만 우리는 네시간 동안 길고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림을 더 사고자 그림을 고르자 그는 내게 얼마를 원하는지 물었다. 내가 모르겠다고 하자 그는 종이에 60유로를 썼다. 그림들은 단번에 보더라도 100유로가 넘었다. 나는 그 밑에 100유로를 썼다. 그러자 그는 내가 다른 그림 하나를 더 건내주면 오케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나머지 세개의 그림을 더해 150유로를 적었다. 그런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작별에 앞서 그가 물었다 "나는 나의 그림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나의 그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나는 대답했다. "당신은 어디에서도 그림을 배우지 않은것 같아요. 그러기에 당신의 그림들은 아이처럼 천진하고 순수합니다. 처음 이 곳의 문을 여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 마음이 두근거립니다. 당신이 얼마나 그림을 그리며 행복해 하는지, 그림을 사랑하는지가 느껴집니다. 나는 어릴때부터 그림을 그렸고 너무 많은 테크닉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테크닉은 때론 순수함을 덮어버립니다. 그것은 사람들을 감동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그림을 만나게 된것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큰 선물입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은 누군가에게 그림을 배운적이 없으며 언제나 'with all my heart'라고 말했다.

작별에 앞서 찰나의 침묵이 흘렀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은 깊고 짙었다. 그리고 그가 처음으로 모국어인 프랑스어로 무언가를 말했다. 내가 알아듣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무언가를 진실되게 오랫동안 말했다. 나는 말했다.
"당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는것 같아요. 아마도 당신은 지금 행복하고 나에게 고마워하는 것 같습니다. 나 또한 당신처럼 행복하며 당신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한번 따뜻한 포옹을 나누었다. 테레핀에 섞인 땀냄새가 났다. 그리고 나는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왜 다시 파리여야 했는지. 그것은 내가 잃어버린 것, 진실하고 아름다운 것...
마음 깊은 곳에서 조용히 눈물이 번졌다. 너무나 고요하고 따뜻하여서 나는 그렇게 가만히, 오래오래 가만히 있고 싶었다.






Mischa Maisky,Martha Argerich-Sonata For Viola Da Gamba And Harpsichord No.2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