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것이 변하지 않는

김계희
2020-12-02
조회수 240


어머니의 사색은 하루의 불합리를 견디고 난 고요한 밤, 아무도 몰래 이루어졌을 것이다.
사색이란 그 시절의 어머니에게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어서,
모두가 잠든 새벽, 어머니는 간혹 실존의 인간이 되어 금새 사라져버릴 욕망을 몰래 떠다니다가
아침이면 다시 변하지 않는 것으로 조용히 내려왔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름답고 완전한 것이 변하지 않는 신비로운 세계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믿으며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오로지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현대 사회의 공격적인 명령과는 상관이 없어서, 그냥 어머니로만 살면 되었다.
그것은 부당함과 불합리, 때로는 모욕의 의미를 동반하는 것이기도 했으나,
역설적이게도 어머니로만 살아야한다는 단순한 명제는 그러한 불합리를 견디게 했다.

자기 자신 외에는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는 남자를 만나고,
당신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스스로 명할 수 없는 삶 속에서,
자신의 사색을 대신해 줄 사나운 자식들을 낳고,
새로운 시대의 자식들은 전투같은 사색을 거쳐 때로는 기적을 일으키거나 영웅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영웅을 낳은 어머니의 이부자리는 그래도 단촐했고,
고무줄이 늘어난 양말은 복숭아뼈 아래 어디쯤에 희미하게 걸려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불합리로 무장된 이 어머니들을 일찍이 만날 수 있었던 우리는
'완전한 것이 변하지 않는' 구원의 기억을 가진 채 세상 속으로 떠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지친 채 돌아왔고, 영웅이 되어 돌아왔고, 때로는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 돌아오기도 했다.
그들이 떠난 거리는 달랐지만 절대적인 단 하나의 기억이 낙타처럼 그들을 돌아올 수 있도록 했다.
그렇게 돌아온 자식들은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던 멋진 남자의 품이 아닌
불합리로 무장된 늙은 어머니의 품에서 동시에 잠이 들었다.
그 잠은 여전히 우리가 옳고, 안전하며,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오로지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명제를 지니고 떠난 자식들이
주채적이고도 자유롭게, 하지만 어떤 새로움도 낳지 못하는 야만적인 분주함을 걸을 때,
적어도 그들은 하나의 정확한 지점을 향해 걸었다.
그들이 무지하고 불합리했을지는 몰라도 어떠한 순간에도 그 지점을 놓치는 적은 없었다.

그러했던 그들이, 이제 지구상에 얼마 남지 않은 그 신비로운 사람들이
이제 이 땅에서의 할 일을모두 끝낸 듯 우리에게서 사라지려고 한다.
모든 것을 이해하기 위해 모든 것을 들었던 귀는 이제 더 이상 듣는 것을 거절하는 듯 퇴화를 시작하고,
그들이 행한 납득할수 없는 사랑과 불합리를 서로 모의를 한듯 동시에 집단적으로 잊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그 생에 한번도 하지 않은 것을 행동하기 시작했다.
과감하고도 애처롭게 우리의 어깨를 부딪히며 쓰러지는 것,  


어머니는 그 생애에서 결코 한번도 나를 향해 넘어진 적이 없었다.
행여나 내가 다칠까 그 찰나의 순간에도 중심을 옮겨 반대편을 향해 넘어진 어머니였다.
그 기이한 신비로움을 철저히 행하던 어머니가, 내 친구의 어머니가, 내 이웃의 어머니가,
서로 약속을 주고받은 듯 우리를 향해 우루루 넘어지기를 시작했다.
그 이마에 우리의 손을 얹게 하려고 열이 나기 시작했다.
그 손을 다시 잡게 하려고 우리가 내민 손을 뿌리치기 시작했다.
어쩌면 아주 오래전에도 그랬던적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는 남자와 자신만의 사색에 골몰한 자식들은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다.

무관심에 질식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을 거절당한 채 그들은 조용히 늙어 갔다.
낡은 벽위에 의미없이 튀어나온 못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고독하게 늙어가는 어머니를 보며
나는 한동안 늙음에 대한 측은함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으나,
그 일이 처음 나에게 일어났을 때,
내 어깨를 부딛치며 쏟아지는 조그맣게 쪼그라든 머리를 느꼈을 때,
나는 이것이 결국엔 애처로와지고야 마는 측은한 삶에 대한 이해를 주기 위한 행동이 아님을 알았다.
어머니가 지금 행하려 하는 것은 - 어머니로서 할 수 있는 것을 다하고, 사람이 할 수 있는 끝을, 참다움을 다하고,
거대한 죽음을 향해 깨끗하게 돌진하고 있는 것임을 알았다.


세상의 많은 이는 어머니가 되어 죽었다. 그 죽음은 개인으로서가 아닌 어머니로서의 의미가 가장 컸다.
그들은 우리에게 우리가 경험한 것 중 가장 거대한 사랑의 체험을 주었기에
그 죽음은 거대했고, 거대한 삶을 의미를 남겼다.
생전에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그들의 거대한 삶은 결국 죽음을 통해 격상되었다.
어머니가 아닌 자의 죽음은 그토록 거대하지 않다.
개인으로서 어떠했던 어머니로서의 죽음이 될 때 그것은 거대해진다.
어머니가 되지 못한 나의 죽음은 거대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이 아닌 모든 것은 거대해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모두 떠난 후, 오로지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애쓰고 애썼던 우리가 그들의 자리를 어떤 방법으로 대신 할 수 있을까...
완전한 것이 변하지 않는 세계가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의 아이들에게 어떻게 보여주고 믿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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