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아버지, 원칙

김계희
2017-11-26
조회수 639

작성일 2008년


초등학교때 이사간 후로 이십리 길을 자전거로 통학을 했다. 여간 폭우가 치는 날이 아니면 비가 와도 한손에 우산을 들고 자전거를 탔다. 칼바람 부는 날에도 눈이 내리는 날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내 등교시간에 일손을 태우러 나가셨는데 그 길에 나를 태우고 가면 될것을 여간한 날씨가 아니면 그러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나는 자전거 타는걸 좋아하긴 했지만 여름 오후의 이글이글 타는 도로의 복사열이나 살갗을 에이는 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그 긴 오르막을 기어도 없이 오르는 일은 끔직했다.
어느날 방죽아래로 미끄러져 손목을 접질렀을 때,나는 차라리 잘된 일이라 생각했다.그런데 아버지는 손목에 파스를 발라주시면서 "한손으로 탈 수 있지?"하셨다.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보드랍게 크던 몸이 갑자기 무리를 했던 탓인지 시름시름 힘이 없더지더니 급기야 걷기가 힘들 정도로 몸이 약해졌다.나는 더 몸이 약해져 아주 아주 약해져 걷지 못할 정도가 되었으면 바랬다. 아침마다 쏟아지는 코피를 바라보며 무언가 복수하는 기분에 통쾌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보약을 사들고 오셔서 "이걸 먹으면 피곤함이 덜할거다."고 하셨다.그 정도를 못견디는 건 운동을 하지 않아 몸이 약해졌기 때문이라고,차를 태워주지 않는건 여전했다. 이런 비싼 약 대신 자동차로 태워주면 간단할 것을 아버지가 이해되지 않았다. 이해라면 양반이고 아버지가 미웠다.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탤런트 최수종씨가 자신이 아이에게 장난감을 사주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 하는 걸 들었다.아이가 쇼위도에서 장남감을 바라보면 그렇게 마음이 애처로울 수가 없다고, 그래도 장난감을 사주지 않는 것은 자신의 원칙이 그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세월이 흘러 교육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그게 아버지의 원칙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랑하는 자식에게 원칙을 내세워야 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저리고 안타까웠을까.

내가 병져 눕던 그때, 만일 아버지가 그 시점에 원칙을 바꾸셨더라면 나는 그것을 지속적으로 누리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몸을 더 약하게 만들어 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버지는 원칙을 고수하셨고 나는 결국 아버지의 자동차를 넘겨다 보는 일은 아예 생각도 않게 되었다. 그리고 겨울이면 달고다니던 감기를 지금까지 잘 하지 않는걸 보면 아버지의 방식이 옳았다.

후에 안 이야기지만 늦은 밤 내가 돌아올 시각이 되면 아버지는 동구밖으로 걸어나와 나를 기다린 적이 많았나 보다. 멀리서 자전거 헤드라이트 불빛으로 방죽길 중간쯤 오고 있는 걸 확인하고는 들어가셨다고 한다. 자전거를 탈때면 늘 불러제끼던 그 노랫소리로 아버지는 그게 내 자전거인지 아셨을 것이다.아마도 아버지는 쪽팔렸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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