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08년
초등학교때 이사간 후로 이십리 길을 자전거로 통학을 했다. 여간 폭우가 치는 날이 아니면 비가 와도 한손에 우산을 들고 자전거를 탔다. 칼바람 부는 날에도 눈이 내리는 날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내 등교시간에 일손을 태우러 나가셨는데 그 길에 나를 태우고 가면 될것을 여간한 날씨가 아니면 그러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나는 자전거 타는걸 좋아하긴 했지만 여름 오후의 이글이글 타는 도로의 복사열이나 살갗을 에이는 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그 긴 오르막을 기어도 없이 오르는 일은 끔직했다.
어느날 방죽아래로 미끄러져 손목을 접질렀을 때,나는 차라리 잘된 일이라 생각했다.그런데 아버지는 손목에 파스를 발라주시면서 "한손으로 탈 수 있지?"하셨다.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보드랍게 크던 몸이 갑자기 무리를 했던 탓인지 시름시름 힘이 없더지더니 급기야 걷기가 힘들 정도로 몸이 약해졌다.나는 더 몸이 약해져 아주 아주 약해져 걷지 못할 정도가 되었으면 바랬다. 아침마다 쏟아지는 코피를 바라보며 무언가 복수하는 기분에 통쾌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보약을 사들고 오셔서 "이걸 먹으면 피곤함이 덜할거다."고 하셨다.그 정도를 못견디는 건 운동을 하지 않아 몸이 약해졌기 때문이라고,차를 태워주지 않는건 여전했다. 이런 비싼 약 대신 자동차로 태워주면 간단할 것을 아버지가 이해되지 않았다. 이해라면 양반이고 아버지가 미웠다.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탤런트 최수종씨가 자신이 아이에게 장난감을 사주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 하는 걸 들었다.아이가 쇼위도에서 장남감을 바라보면 그렇게 마음이 애처로울 수가 없다고, 그래도 장난감을 사주지 않는 것은 자신의 원칙이 그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세월이 흘러 교육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그게 아버지의 원칙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랑하는 자식에게 원칙을 내세워야 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저리고 안타까웠을까.
내가 병져 눕던 그때, 만일 아버지가 그 시점에 원칙을 바꾸셨더라면 나는 그것을 지속적으로 누리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몸을 더 약하게 만들어 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버지는 원칙을 고수하셨고 나는 결국 아버지의 자동차를 넘겨다 보는 일은 아예 생각도 않게 되었다. 그리고 겨울이면 달고다니던 감기를 지금까지 잘 하지 않는걸 보면 아버지의 방식이 옳았다.
후에 안 이야기지만 늦은 밤 내가 돌아올 시각이 되면 아버지는 동구밖으로 걸어나와 나를 기다린 적이 많았나 보다. 멀리서 자전거 헤드라이트 불빛으로 방죽길 중간쯤 오고 있는 걸 확인하고는 들어가셨다고 한다. 자전거를 탈때면 늘 불러제끼던 그 노랫소리로 아버지는 그게 내 자전거인지 아셨을 것이다.아마도 아버지는 쪽팔렸을 것이다. -.@
작성일 2008년
초등학교때 이사간 후로 이십리 길을 자전거로 통학을 했다. 여간 폭우가 치는 날이 아니면 비가 와도 한손에 우산을 들고 자전거를 탔다. 칼바람 부는 날에도 눈이 내리는 날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내 등교시간에 일손을 태우러 나가셨는데 그 길에 나를 태우고 가면 될것을 여간한 날씨가 아니면 그러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나는 자전거 타는걸 좋아하긴 했지만 여름 오후의 이글이글 타는 도로의 복사열이나 살갗을 에이는 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그 긴 오르막을 기어도 없이 오르는 일은 끔직했다.
어느날 방죽아래로 미끄러져 손목을 접질렀을 때,나는 차라리 잘된 일이라 생각했다.그런데 아버지는 손목에 파스를 발라주시면서 "한손으로 탈 수 있지?"하셨다.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보드랍게 크던 몸이 갑자기 무리를 했던 탓인지 시름시름 힘이 없더지더니 급기야 걷기가 힘들 정도로 몸이 약해졌다.나는 더 몸이 약해져 아주 아주 약해져 걷지 못할 정도가 되었으면 바랬다. 아침마다 쏟아지는 코피를 바라보며 무언가 복수하는 기분에 통쾌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보약을 사들고 오셔서 "이걸 먹으면 피곤함이 덜할거다."고 하셨다.그 정도를 못견디는 건 운동을 하지 않아 몸이 약해졌기 때문이라고,차를 태워주지 않는건 여전했다. 이런 비싼 약 대신 자동차로 태워주면 간단할 것을 아버지가 이해되지 않았다. 이해라면 양반이고 아버지가 미웠다.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탤런트 최수종씨가 자신이 아이에게 장난감을 사주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 하는 걸 들었다.아이가 쇼위도에서 장남감을 바라보면 그렇게 마음이 애처로울 수가 없다고, 그래도 장난감을 사주지 않는 것은 자신의 원칙이 그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세월이 흘러 교육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그게 아버지의 원칙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랑하는 자식에게 원칙을 내세워야 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저리고 안타까웠을까.
내가 병져 눕던 그때, 만일 아버지가 그 시점에 원칙을 바꾸셨더라면 나는 그것을 지속적으로 누리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몸을 더 약하게 만들어 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버지는 원칙을 고수하셨고 나는 결국 아버지의 자동차를 넘겨다 보는 일은 아예 생각도 않게 되었다. 그리고 겨울이면 달고다니던 감기를 지금까지 잘 하지 않는걸 보면 아버지의 방식이 옳았다.
후에 안 이야기지만 늦은 밤 내가 돌아올 시각이 되면 아버지는 동구밖으로 걸어나와 나를 기다린 적이 많았나 보다. 멀리서 자전거 헤드라이트 불빛으로 방죽길 중간쯤 오고 있는 걸 확인하고는 들어가셨다고 한다. 자전거를 탈때면 늘 불러제끼던 그 노랫소리로 아버지는 그게 내 자전거인지 아셨을 것이다.아마도 아버지는 쪽팔렸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