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의 시대

김계희
2017-11-29
조회수 906

작성일 2014.1


  rodrigoleao-alma mater



새벽 네시였다. 잠속에서 심선생님의 담궈놓은 동판을 꺼내놓지 않았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치는 순간 침대과학이 만든 시몬스社의 스프링처럼 몸을 튕겨 후다닥 옷을 챙겨 입었다. 그리고 그건 이미 네달전의 일이라는 기억이 상기되었다. 잠속에서 타임머신을 탔다. 잠든 사이 시간이 꺼꾸로 흘렀다. 스프링처럼 일으킨 몸이 아까워 미친척하고 판화실에 갔다. 연탄 두장이 타고 있는 세벽 네시의 공방은 클레이트로닉스의 개발을 목전에 둔 첨단시대의 공간이라고는 믿기 어려울만치 추웠다. 예나 지금이나 화가들이 거처하는 공간은 이토록 추운것인지 참으로 소설스러운 일이었다. 게다가 난로옆에는 고흐같은 무산자들이 먹던 물기빠진 감자가 절실하게 널부러져 있었으니 영하 십오도의 추위속에 달려온 내가 미친듯이 좌절스러웠다. 이러한 좌절감으로 스물아홉서른두시간만 작업에 골몰한다면 이윽고 위대한 작품이 탄생하고 말것 같은 기대감마저 맴돌았다.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던 중학 시절의 몽산미술학원도 이때처럼 추웠다. 연탄난로 옆에는 감자와 식빵이 널부러져 있었고 나는 방학내내 버터도 바르지 않은 감자와 식빵을 난로 뚜껑 위에 구워먹었다. 대학시절 실기실은 그나마 난로도 없어 완벽한 소설을 탄생시켰다. 지금 생각하면 살짝 정신이 돌았던게 확실하다. 방학내내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실기실에 갔으니, 미술관 건물엔 나 하나 뿐이었다. 거기서 머했게? 술이나 마셨겠지. 졸업을 하고 나서도 감자의 시절은 변함없이 이어져 우사를 개조한 산 아래 작업실은 십이월이면 또 영하 십오도가 되었다. 검은 밤 지붕위로 귀신이 곡하는 소리가 들리고, 골프 연습생들이 간혹 내미는 도시락이 아니면 계속되는 감자의 시대였으니 그 겨울 드넓은 우사를 지키며 나는 또 머를 했게? 술이나 마셨겠지. 겨울이 싫어. 추웠거든. 얼마나 눈이 많이 왔게? 체인이 한번 풀린 자전거는 그때부터 툭하며 체인이 풀리지. 눈덮인 기다란 도로 위에서 체인을 고치던 시절은 감자의 시대와는 비교도 안될만큼 소설스러웠거든.


어쨌거나 난로의 공기통을 열고 감자를 넣었다. 그리고 그 모든것이 지난 시절이라는 것이 새삼 생각났다. 지난 성탄절엔 그 난로에 산지에서 직배송된 생굴을 네박스나 구워 먹었으니까. 정말 고급스러웠지. 너무나 고급스러워 이따위로 먹다간 예술은 글렀다는 생각마저 들었으니까. 그리고 생각했다. 이제는 없는 절실함에 대해서.
라고 쓰고 마무리 하려 했는데 그렇다면 감자의 시대에는 절실함이 있고, 생굴의 시대에는 절실함이 없는가? 에 대해서 할말 있음. 그런데 잠오니 이건 기약없는 다음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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