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환

김계희
2017-11-29
조회수 913

작성일 2014.07


   mama!milk-a piacere



줄리언 반스의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젊은 시절 분노의 찬 말들이 상대방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주고 해석되고 있었는지를 이야기한다. 이 책은 "회환"이라는 단어를 가장 잘 표현하는 책이라고 이동진님이 설명을 덧붙였다.
친구를 만났다. 꼭 해야 할 일이라고, 그 생각을 한지 이틀 후에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해서는 안되었던 말에 대해, 그의 손을 잡고 사과를 했다. 그의 눈물은 말하지 않은 나의 말과 그의 말 모든 것을 알게 했다. 상처가 사라질 것인가? 그런 말은 우습다. "어떻게 네가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니?"라고 반문하던 목소리가 심장에서 들려오던 밤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좋은 기억만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결코 그럴리가 없겠지만, 그렇게 말해주어서 고마웠다. 그를 치유해주고자 했는데 돌아와 마음이 따뜻한 걸 보니 그가 나를 치유해 준 듯 했다.
누군가 나에게 그렇게 말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상처가 사라질 것인가? 다시, 그런 말은 우습다. 그저, 과거는 현재를 통해 바꿀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충분하지는 않겠지만, 한시절의 처참했던 순간에 얇지만 부드러운 모포를 덮어줄 수는 있을 것이다. 현재에서 그때를 바라보건데, 전에 없던 주황빛 모포가 거기에 있다면, 우리는 지금과 조금 다를 것이다. 충분한 것이 있다면 그 정도일 것이다.



내 얘기의 요지는 장담컨데, 회환의 주된 특징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데 있다. 이미 까마득한 시간이 흐른 마당에 사과를 하거나 보상해봤자 부질없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틀린거라면? 시간을 거꾸로 돌려서 회환을 단순한 죄책감의 문제로 바꾸어, 사과를 하고 용서를 받을 방도가 있다면? 베로니카가 생각한 것처럼 내가 나쁜 놈이 아니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녀가 기꺼이 그를 받아 준다면? 어쩌면 나의 동인은 전혀 반대방향에서 출발했고, 사실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관한 문제인지도 모른다.

인생에 대해 내가 알았던 것은 무엇인가, 신중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았던 내가, 이긴적도 패배한적도 없이 다만 인생을 흘러가는 데로 살지 않았던가. 고지서를 납부하고, 가능한 한 모든 사람들과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았을 뿐, 환희와 절망이라는 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소설에서나 구경한 게 전부인 인간으로 살아오지 않았던가. 자책을 해도 마음속 깊이 아파한 적은 한번도 없지 않았던가. 이 모든 일이 따져봐야 할 일이었다고, 그러는 동안 나는 흔치않은 회환에 시달렸다. 그것은 상처받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쳤던 인간이 비로소 느끼게 된 고통, 그리고 바로 그랬기 때문에 느끼게 된 고통이었다.

"나가!"시속 삼십킬로미터 연석 위에 차를 세운 후 베로니카는 일갈했다. 이제야 난 그 말이 품고 있는 더 폭넓은 울림을 이해했다. 내 인생에서 꺼져버려, 너는 내 인생에 다시는 상종하고 싶지 않은 인간이야. 네가 만나자고 했을때 승낙하는 게 아니었어. 점심 약속도 마찬가지고. 널 데리고 내 아들을 보러간 것은 더더욱. 나가, 나가라고! 베로니카의 주소를 알았다면, 나는 예의를 갖추어 편지를 보냈을 것이다. 대신 나는 이메일을 썼고 처음엔 소문자로 '사죄한다'고 썼다가 다시 대문자로 '사죄한다'라고 썼지만, 그래놓고 보니 악을 쓰는 것처럼 보여서 다시 소문자로 썼다. 그저 솔직하게 쓰는 것 말고 도리가 없었다.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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