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소녀 로잘리아

김계희
2017-11-29
조회수 470

작성일 2013.8



유월 중순경 한통의 메일을 받았다. 지난해부터 후원하고 있는 희망나무 여기동님이 네팔에서 보내온 편지였다. 여기동님은 정신보건학을 전공하고 세계각지로 정신건강 및 보건지도 봉사를 다니시는 분이다. 메일은 인도소녀 로잘리아의 학비마련을 위한 내용이었다. 로잘리아는 현재 17세 소녀로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차밭에서 일을 하는 일일노동자로 근근히 생계를 꾸려가는 어려운 형편이다. 로잘리아는 초등, 중등과정인 10학년을 졸업하고 올해 인도의 수능시험에 합격하여 대학진학의 자격을 받았다. 수능시험에서 힌디(인도어) 과목은 로잘리아가 사는 시에서 1등을 하였고 나머지 과목도 우수한 성적을 받은, 간호사나 의사가 되기를 꿈꾸는 학생이지만, 가정형편상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풍습대로 결혼을 해야하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희망나무는 아직 소규모의 모임이라 후원자가 많지 않고 가까운 시일내에 등록을 하지 않으면 진학이 무산된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의 이년간 고등학교 학비와 기숙사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장학금은 페인팅레이디와 친구들의 이름으로 올해와 내년 두차례에 나누어 전달될 예정이다.


우리는 어렵게 학교를 다녔다. 재수같은건 꿈도 못꿨기에 모두 하향 지원을 했고, 생활비는 물론 졸업후에도 대출한 학비를 갚으며 일했다. 꿈을 파괴시킬 정도의 가난은 아니었지만 가난때문에 꿈을 미루거나 돌아가야 했던 적은 많았던 것 같다. 시장통 가게 딸린 단칸방에서 공동 화장실을 쓰며 살기도 했고, 엄마는 식당에서 먹고자며 허드렛일을 하기도 했다. 가난한 집에서 꿈을 찾아가는 건 다른 가족의 희생이 따르는 법이라, 그것을 아는 우리는 적당히 포기하고 적당한 꿈을 가졌다. 그래서 시간이 더뎠던 것도 사실이다. 부모의 뒷받침이 조금 더 있었다면 이렇게 돌아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돌아가는 동안 겪은 것들, 잃은 것과 얻게 된것을 불행이라고도 축복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세평 지붕아래서도 생기고, 삼백평 지붕 아래서도 생길수 있는게 최선이라서, 늘 최선은 다하며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최선이 꼭 최고가 아니라는 것 쯤은 알 나이여서 최선이 꾸게하는 꿈 따위는 탐탁치가 않았다. 그런 시절이 주는 최선의 꿈이란 그저 조금더 잘 입고 조금 더 잘 먹는거 다여서, 다른 꿈을 꾸고 싶었던 나는 우울증에 시달렸다. 굳이 희망이라면 "오빠가 돈벌어 꼭 유학보내줄께." 라는 믿기지 않는 다짐 뿐이어서 '어쩌면 그렇게 될지도 모르는'다짐에 종종 현실을 혼동했다. 혼동은 그 시절을 버티게 해 주었던 것 같기도 하다.


로잘리아의 후원을 의논하면서 나는 로잘리아가 고등학교를 마친다 해도 결국 대학교 후원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대학 진학을 포기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건 또 다음의 이야기일것이다. 그녀는 이년동안 공부를 하면서 자신의 장래에 대해 더 깊이 숙고할수 있을 것이고, 절박함이 간절함을 낳는다면 더 열심히 공부해 스스로 대학에 다닐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너무 어린 나이에 겪는 좌절에 대해서 나는 회이적이다. 성장기의 소년 소녀들이 꿈꿀 시기를 놓치는 것은 계속될 절망의 선택을 예고하는 것과 다름없다. 적어도 꿈꿀 수 있는 시기가 주어진다면 언젠가는 그 꿈을 다시 펼쳐볼 계기를 스스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녀의 장래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좌절의 시기를 조금 늦추고 꿈꿀수 있는 시간을 줄 수 있다면 좋은 일일 것이다.


오래전 극장에 갔던 때가 생각난다. 주제를 알고 꿈을 꾸라는 외부의 소리가 내부를 성가시게 하던 시기였다. 엄청난 인파가 영화표를 사기 위해 줄을 이루고 있었고 그 앞에는 스무살을 갓넘긴듯 보이는 청년이 지친 표정으로 끊임없이 팝콘을 종이봉투에 넣고 있었다. 방학을 즐기러 나온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 팝콘을 사기 위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영원히 끝날것 같지 않은 줄을 이루고 있었다.
그를 보면서 생각했다. 꿈이라는건 얼마나 혹독하고 실망스런 것인가. 저 소년에게 병든 부모와 줄줄이 딸린 어린 동생들이 있다면, 잠만 자고 일해도 나아지지 않은 상황들이 매일 아침 그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런 이들에게 그럼에도 꿈을 꾸어야 한다고 부르짖는 것은 얼마나 주제넘고 가당찮은 일이겠는가.
그런데 나는 생각했다. 그래도 꿈을 꾸어야 한다고,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가난은 정말 비참해 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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