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들

김계희
2017-11-29
조회수 553

작성일 2013.8



지난주는 많이 더웠다. 어제 오늘은 저녁이 조금 선선하다. 에어컨이 없는 공방에서는 기온의 차이를 피부로 느낀다.
봄부터 판화실에서 살다시피 한다. 더위에 사람들의 발길은 뜸해졌지만 여전히 꾸준한 사람들이 있다.
얼마전엔 공방에서 밤을 새웠는데 새벽 여섯시에 회장님이 동판을 부식액에 담궈 놓으려고 나오셨다. 어쩌면 내가 아직 작업을 하고 있으려니 해서 눈뜨자 마자 나오셨다고 한다.
오늘은 너무 더워 아무도 오지 않으려니 했는데 최수남 선생님이 와서 작업을 하고 계셨다.
전시를 앞둔 철호 선생님은 매일 아침 아침부터 나와서 밤 열한시에 나와 함께 집으로 간다.
나를 차로 태워 주실때도 있고 함께 신천을 가로질러 선생님 집까지 걸어 갈때도 있다.
동판을 만들때는 몸을 많이 쓰지 않지만 잉킹을 하거나 실크 스크린을 밀때는 땀이 비오듯 한다.
공방에는 선풍기 세대가 돌아가고 우리는 땀을 많이 흘려 물을 많이 마시는데도 화장실엘 가지 않는다.
어제 오늘은 좋은 작업이 나와 보람된 날이었다. 한달을 꼬박 감이 어수선해서 고생을 했는데 이제 윤곽이 잡힌다. 이런 날은 더위도 잊게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상쾌하다.


얼마전엔 정희윤 선생님께서 동화책 같은 걸 하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다. 아무도 보지 않는 그림을 그려가는게, 언젠가 죽으면 이 그림들이 모두 태워져 한줌 재로 사라질것을 생각하면 공허하다고, 자신의 그림을 사람들과 공유했으면 하는 말씀이시다. 정희윤 선생님은 공방의 누구보다 작업을 열심히 하시는 분이다. 죽으면 다른것도 다 재로 사라지잖아요. 그래도 그림때문에 좀 더 행복한 삶을 산거잖아요.라고 위로 했지만, 그 마음을 모르지 않는다.
내가 아는 선배는 언젠가 "이주일 동안은 그림을 않그리려고 한다."고 했다. 삼백호 캔버스에 십만원짜리 물감을 톡 쏟아부으니 캔버스 한귀퉁이에 한움큼 뿌려지더란다. 그걸 다 채우려면 돈이 드니 안그리는게 돈을 버는 거라고 며칠동안 그림을 안그린다는 뜻이다.


나는 그림이라는게 아름다운 꿈을 꾸는 일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저렇게 돈도 안되는 작업을 열심히, 기꺼이 즐겨하는 사람들을 볼때면 사랑이랄까 감동이랄까 그런 감정들이 차오른다. 아무도 없는 공방에서 고요히 작업을 하고 있노라면 가슴이 울컥하고 감동이 차오를때가 있다. 아름다움 때문이다. 내가 어떻게 그림을 그리게 되어 평생을 이것과 사는구나 생각할때면 감사함을 느낀다.


어제는 철호 선생님이 라디오에서 들리는 노래를 듣다가, 이십년전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뭘하고 싶으냐고 물어서 안돌아 가도 된다고 했다. 나는 정말 안돌아가도 된다. 하고 싶은걸 다 하며 살았고, 그다지 후회회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항상 죽음을 생각하면 좀 더 그리고 싶은 그림들이 있고, 꼭 쓰고 싶은 책이 한두권쯤 있는 것 같다.
공방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이 행복하다. 무엇이든 퍼주시려는 철호 선생님께 항상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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