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노 디아스의 길고 놀라운 책

김계희
2017-11-29
조회수 708

작성일 2011년



복태가 대박이라고 일러준 책, 주노 디아스-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한마디로 길고 놀라운 책. 미친 개자식 트루히요 정권의 저주로부터 시작된
3대에 걸친 비극과 삶 사랑이야기. 강추.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반짝이는 문장들

"사춘기에 왕따가 된다는 것은 정말이지 개떡같은 일이다.
태양이 백만년만에 얼굴을 드러내는 그 순간에 금성에서 옷장에 갇혀있는 기분이랄까."

"우리의 소녀는 공식적으로 미친듯한 속도로 육감적인 몸매를 갖추었고,
그건 포르노 감독이나 만화가만이 맑은 정신으로 그려볼 만한 몸뚱이였다."

"어느 깜둥이라도 할 수 있는 곤충수준의 단세포 산수"

"세상 모든 의자들에 도전하는 거대한 중년의 엉덩이"

"성공은 목격자를 좋아하고, 실패란 목격자 없이 성공할 수 없는 법"

"은행에는 수억이 있으면서도 영혼에는 단 일원도 없는 그런 인물"

"깜둥이는 꼭 저주가 아니더라도 허다하게 죽어나갈 만큼 세상은 비극으로 가득하다."

"그녀는 우리 섬에 그토록 팽배했던 기억상실을 기꺼이 받아 들였다.
절반은 부정이었을 것이고,절반은 음성적인 환각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서인도제도에 만연한 망각의 힘을 기꺼이 수용했다.
그리고 거기서 부터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 갔다."



-유일하게 접어둔 페이지

"그녀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나는 평생 알 수 없을 것이다. 놈들은 그녀를 노예처럼 때렸다. 개처럼 팻따. 그녀의 쇄골은 으스러졌고, 오른쪽 상박골은 삼중 골절을 입었으며, 갈비뼈 다섯대가 부러졌다. 또한 왼쪽 신장과 간에 멍이 생겼고, 오른쪽 폐는 쪼그라들었고, 앞니는 부러졌다. 총 육백칠십군데를 다쳤으며, 그 새끼들이 벨리의 두개골을 부숴버리지 않은 건 순전히 우연이었지만, 어쨌든 머리도 부어올라 코끼리만해 졌다. 강간할 시간이 있었을까? 있었을 것 같지만 알 수 없었다. 그 점에 대해선 그녀가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으니까. 그건 언어의 끝이었고,희망의 끝이었다고 밖엔 말할 수 없다. 그건 인간을 파괴하는, 온전히 파괴하는 폭력이었다.

기력이 잦아드는 가운데 희미한 빛속에서 고독이 하품을 했다. 그 고독은 너무나 절대적이어서 죽음 이상이었고, 모든 기억을 지워 버렸다. 이름조차 없었던 어린 시절의 고독과 같았다. 그녀는 그 고독 속으로 들어가 영원히 혼자서, 흑인으로, 흉악한 몰골로 살것이다. 막대기로 흙먼지 속을 긁적이며, 그리 휘갈긴 것이 문자인 양, 낱말인 양, 이름인 양.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때, 진정한 신앙인이여, 마치 조상의 힘이 돌보듯 기적이 일어났다. 우리의 소녀가 사건의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려던 찰나, 차가운 망각이 그녀의 다리를 앗아가고 있을 즈음,그녀는 제 속에 마지막으로 남겨둔 힘을 발견했다. 그건 카브랄 집안의 마력이었다. 또 한 번 당했다는 사실을, 이번에도 갱스터와 산토도밍고의 노리개가 되었다는 사실을, 자신의 어리석은 욕망이 거기에 불을 붙였다는 사실을 깨닫자 그녀는 마법처럼 마지막 힘을 끌어 낼 수 있었다. <흑기사 귀환하다>에서 슈퍼 히어로가 온 정글을 뒤져 핵미사일을 막아낼 광자에너지를 끌어냈듯이,우리의 벨리도 분노로 부터 살아남을 결심을 이끌어 냈다. 다시 말하면 용기가 그녀를 살렸다.
내면의 환한 빛처럼,태양처럼.
그녀는 사나운 달빛 아래서 정신을 차렸다. 부서진 소녀가 부러진 사탕수수 줄기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살아 있었다. 살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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