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제인

김계희
2017-11-29
조회수 606


작성일 2012년


Emilie mover - wait till It snows




자전거에 대한 추억은 유별나다. 얼마나 자전거를 타고 싶었던지 오빠들이 타는 키큰 자전거를 일이년동안 질질 끌고다녔던 것 같다. 오빠들은 뒤에서 자전거를 붙잡아 주면서 "패달을 세게 밟아! 패달을 세게 밟아야 넘어지지 않아!" 라고 말했지만 나는 패달을 밟는 동시에 자전거에서 뛰어 내리곤 했다. 그래도 자전거가 타고 싶어 방과 후면 자전거를 질질 끌고 골목을 돌아다녔다. 자전거를 못 타는게 부끄러워 큰길로는 나가지 못했다. 골목에서 반 친구들이나 동네 어른들을 만나면 벽에 기대어 놓고 잠시 쉬는 시늉을 했다.


안장에 펄쩍 뛰어 올라 힘껏 패달을 밟았던, 그때 자전거가 균형을 잡고 달려가던 그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할거다. 패달을 밟자 바퀴가 시원하게 한번 쑥 굴렀고 그때 오빠들이 한 말이 생각나서 한번 더 패달을 밟았다. 가슴이 방망이질 쳤다. 그때 축축해진 이마로 불어오던 시원한 바람, 가슴에 차오르던 희열을 잊지 못한다. 오늘처럼 부슬부슬 비가내리고 있었고, 시장통으로 내려가는 내리막길로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그날 나는 한시간동안 자전거를 타다가 집으로 들어갔고 다음날 아침에도 자전거를 타기 위해 일찍 일어났다. 초등학교 사학년, 오늘처럼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시작된 무렵이었다.


그날 후, 방과후면 어김없이 자전거를 타고 앞들로 나갔다. 소풍때를 제외하곤 먼 곳을 간게 자전거를 타면서부터다. 앞들로 가면 토끼풀을 가득 뜯어와 토끼에게 먹였다. 토끼는 엄청나게 먹었고 엄청나게 새끼를 낳아 점점 더 엄청난 양의 풀을 뜯었다.
자전거를 타면 여행자가 된 것처럼 자유롭고 내가 멋지게 느껴졌다. 특히 오빠들에게 물려받은 갈색 체크 남방에 케멀색의 김민제 바지를 입고 자전거를 탈때가 가장 멋지게 느껴졌는데, 그 바지에는 작은 구멍이 났었다. 무릎에 구멍난 바지가 자전거를 타는 내 모습과 무척 어울린다고 생각했던것도 같다.


중고등학교때도 자전거로 등하교를 하며 매일 한시간을 넘게 자전거를 탔지만, 햇볕이 부신 봄가을날이면 더 유난히 자전거를 타고 싶어 부랴부랴 점심을 먹고 교실을 빠져 나오곤 했다. 김천으로 이어진 도로에 핀 코스모스는 매일 보아도 좋았고, 그럴때면 김창완의 노래가 절로 흘러나왔다.
입시생 시절 밤늦은 미술학원에서도 자전거를 훔쳐 타고 빠져나오던 게 즐거움이었다. 캄캄하고 고요한 금오여고 운동장을 달리며 듣던 Chuck Mangione의 Feel So Good과 camel의 stationary traveller도 잊지 못한다. 그때 자전거는 나에게 비밀회의실 같은 거였다.


링크해둔 수많은 자전거 사이트를 둘러봐도 모양이 좋으면 휠이 너무 크고, 휠이 맞으면 프레임이 두껍고....까다로운 취향에 맞는 자전거가 딱히 없어 사지 못했다. 일본여행에선 길가에 즐비한 자전거를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28인치 휠이긴 하지만 코펜하겐밀크버터를  보기 위해 압구정까지 찾아가기도 했다.
며칠전 태풍이 오던 날 밤 우연히 자주 가던 사이트(자이크)에서 더치바이크 제인클래식을 발견했다. 26인치 휠에 17kg의 무게가 좀 부담스럽긴 했지만, 모양이 내가 좋아하는 파쉴리社의 클레식 라인이랑 흡사했다. 마침 그 유명한 가게가 경산에 있어 다음날 아침 폭우를 뜷고 자전거를 보러갔다. 샤프한 것을 좋아하는데 프레임이 사진에서 본 것보다 조금 굵은 느낌이었고 내 작은 몸에 비해 자전거가 무척 컸다. 하지만 파쉴리보단 프레임이 조금 가늘기도 했고 파쉴리는 킅태식라인이 수입도안되고 해서, 가격대비 괜찮은 것 같았다. 처음엔 몸에 비해 자전거가 큰 것 같았는데 타보니 내 몸에 비해 오히려 큰 게 더 멋져 보였다. 더구나 색깔이 죽이게 맘에 들었다. 요즘은 블랙이 대세긴 하지만 이렇게 deep한 진청록의 색깔은 잘 나오기 어려운 색깔이라, 그리고 내가 가진 어느 옷이랑도 잘어울리는 자전거라,



그 래 서


드 디 어


자전거를 구입했다.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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