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숫자들

김계희
2017-11-27
조회수 714

작성일 2010년


어린 시절 나는 숫자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일 년이 열두 달이고 삼백 육십 오일이라는 게 도대체 왜 그런 것인지, 구구단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숫자들은 모두 비슷비슷하게 생겼고, 나는 그 조합에서 아무런 내용을 찾을 수 없었을 뿐 아니라, 그것들은 전혀 시(詩)적이지 못했다. 중학 시절, 수학 선생님이 사점짜리 시험지를 들이밀며 “지금 반항하냐?”며 머리통을 후려갈길 때면 참으로 억울하고 참혹하여, 나는 수학 없는 세상에 살고 싶었다. 문제는 그런 수모가 1년으로 끝나지 않고, 해가 갈수록 수학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그럴수록 학교생활도 힘들어 진다는 것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그 시간들을 참고 견디는 것이 다인 듯 보였다.


학교를 졸업하고, 그 후 수학이 내게 필요했던 적은 단 한순간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지금 나는 “수학? 그거 필요 없던데요.”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없다. 화살처럼 날아드는 그 기호들을 피해 다니느라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바닥을 벌벌 기어야 했던 그 한심한 시간들을 겪게 한 것이 바로 수학이고, 정수를 풀지 못하면 유리수를 풀 수 없고, 곱셈공식을 외우지 못하면 인수분해가 안 되고, 그래서 방정식을 풀 수 없고, 결국 함수를 풀 수 없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준 것이 수학이기 때문이다.


수학이라는 난제를 피해 겨우 어른이 되었는데 인생은 구구단과 함수를 넘어 미분과 적분의 문제 속으로 내달리고 있었고, 그제야 내가 알게 된 것은 예전에 풀지 못하고 피해버린 문제는 결국 내게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왜 이런 이상한 기호를 부여잡고 12년 동안 씨름을 해야만 하는지 그땐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지만, 평균 점수를 다 깎아 내리면서도 수학이 아이들의 세상에서 그토록 혹독한 위상으로 버티고 있는 이유는 아마 그 때문일지 모르겠다. 인생에 전혀 필요없는 것이라 여겨지는 일일지언정 견디고, 받아들이고, 풀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 다음 장으로 넘어 갈 수 있다는 것. 수학은 그걸 가르쳐주기 위해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내 인생에 도움이 안 될 것 같은 일을 하고, 이상한 나라의 숫자 같은 사람들을 만나고, 풀기 어려운 문제에 부딪힐 때면 생각하곤 한다. “이런...또 수학이잖아!“ 예전에 생겼던 똑같은 문제들이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면서도 여전히 발생하는 것은 그때 곱셈을 제대로 풀지 못한 채 학년을 올라갔던 때문일 것이다. 0에 아무리 0을 더해도 결과는 여전히 0이다. 이것은 수학이므로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때 내 머리통을 후려갈기던 수학이 알려주고자 했던 것은 바로 그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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