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좋다

김계희
2017-11-26
조회수 710

작성일 2008년 8월


10평짜리 벽걸이 에어컨을 두개 샀다. 하나는 작업방에 하나는 시골집에.아버지께 전화를 하니 정색하시며 필요없다고,이럴때는 방법이 있지.
"엄마때문에 그래요. 엄마가 더위를 얼마나 많이 타는데,엄마가 시골 다니며 고생하는게 싫어서 그래요. 일하는 분들도 한시간이라도 시원한데서 밥먹고 쉬다가 밭에 나가야지 일도 잘 되지.지치면 모두 힘들어요." 겨우 알았다는 이야기를 받아내고 끝인사에 묻어나오는 아버지의 고마워 하는 마음을 느끼며 기분이 좋으면서도 뒷덜미가 부끄러운지.

올해는 시골집 재래식 화장실을 수세식으로 바꾸려는 계획을 세웠었지만 놀고 입고 먹는데 쓰느라 그렇게 하지 못했는데 아버지는 내가 돈을 어디다 쓰고 다니는지도 모르고 내 돈을 아까워 하시는 것이 부끄러운거지.다 그런거지 부모는.자식은 하룻밤에 술값으로 옷값으로 에어컨 한대값을 쓰는데도 겨우 한번 하는 행사에 두고두고 동네에 자랑을 하지. 우리 애가 얼마나 효자인가 하고...

이십년 전에는 꽤 탄탄한 집이었지만 보수를 하지 않은 집은 이제 손볼곳이 한두군데가 아니다.자꾸만 고장나는 보일러를 뜯어 새로 보일러를 놓는것과 창을 이중으로 바꾸고 벽면에 석고보드로 더해 외풍을 줄이는게 내가 내년까지 하고 싶은 것들이지만 나는 또 놀고 먹고 쓰느라 그 돈을 몽땅 날리겠지.

그래도 이번 여름엔 친구들과 여행갈 계획을 에어컨과 바꿨으니 이걸로 위로하는거지.뭐,적당히 좋은거야.아버지에겐 아직도 꿈이 있고 나에게도 꿈이 있고,칼바람이 숭숭 창틈으로 기어들어오는 집에서 내년이면 보일러를 새로 놓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 있는 건,그래서 나도 열심히 일을 할 수 있고 아버지도 열심히 일을 할 수 있는 건,에어컨 바람이 새 나가지 않게 부엌문을 닫고 창문을 꽁꽁 걸어잠그고 그러면서 전깃새가 많이 나올까 걱정하며 껐다 켰다 반복하는건,최고로 좋지는 못해도 적당히 좋은거야.최적의 시원함은 못되지만 적당한 시원함은 줄 수 있는 10평짜리 에어컨처럼, 적당히 좋은게 최고로 좋은 건지도 몰라.인생에서 제일로 좋은 칸은 다음칸으로 가리라는 희망을 품은 이번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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