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

김계희
2017-11-27
조회수 723

작성일 2009년


몇개의 책을 읽었다.
읽다보니 대부분이 전쟁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소년병의 고백을 다룬 이스마엘 베아의 <집으로 가는 길>을 읽으며
앞서 읽은 책의 광경들이 오버랩되었다.
첫날엔 스무장을 읽어낼수 없었다.
고통이 마음을 너무 힘들게 했기 때문이다.
며칠 후 다시 책을 펴고 반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한페이지 한페이지를 눈물로 적셨다.
끝없는 눈물이 몸속 큰 우물에서부터 흘러넘치는 것 같았다.
나에게는 열살짜리 조카와 일곱살,여섯살짜리 조카가 있다.
책을 덮자 거대한 잿빛구름같은 고통이 마음을 휩쓸고 지나갔다.
<더 로드>에서 펼쳐지던 잿빛하늘같은 절망감이었다.

나는 종종 세상이 컴퓨터 게임같다는 생각을 한다.
한쪽에서는 항상 전쟁을 일으키고,
한쪽에서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대항하고,
한쪽에서는 아무것도 모른채 슬퍼하지 않으며,
한쪽에서는 전쟁에서 실려온 부상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분주하다.
세상은 언제나 그랬고, 그것이 세상이었다.

전쟁과 굶주림이 종식되고 세상이 모두 평화로운 그런 날?
모두가 사랑하고,그래서 모두가 배부르고, 그래서 모두가 행복한 날?
나는 처음으로 그런 날은 오지 않을것이라고,
세상은 변하지 않는 이 모습 그대로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전쟁과 굶주림은 그치질 않을 것이고,
인간의 사랑과 정의로 전쟁과 굶주림을 종식시키고자 항거할 것이고,
또한 인간의 이기심으로 우리는 무관심 할 것이기 때문이다.

신과 나눈 이야기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아담의 타락으로 표현되어 온 것은 사실 아담의 상승이었다.
이것은 인류사에서 가장 위대한 단일 사건이었다.
왜냐하면 그 사건이 없었다면 상대계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은 상대계를 통해 양자간의 인식을 명확하게 했다.
어둠이 없다면 빛은 설명되지 못할 것이고
신은 그 대립을 통해 인간의 자유의지로 체험을 선택하도록 만들었으니,
우리는 불결의 체험을 통해서 순결의 체험을 원하고,
절망의 체험을 통해서 행복의 체험을 갈구하고,
불의를 통해 정의를 구하며,
살인을 통해 죄를 인식하고,
전쟁과 굶주림을 통해 사랑을 찾는다.

우리의 이기심과 우리의 드넓은 사랑 사이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충돌하며 해답을 찾아 나아가겠으니,
세상이 이렇다고 불평하지 말지니,절망하지 말지니,
신이 만든 이 조화로운 상대계의 팽팽한 알력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 체험을 선택하며 살아갈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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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냥꾼이 있었는데, 원숭이를 잡으로 숲으로 갔단다.
사냥꾼은 이윽고 나뭇가지에 앉은 원숭이를 발견했지.
그런데 이놈의 원숭이가 사냥꾼이 다가오면서
마른 낙엽을 밟아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데도 도망갈 생각도 안 하고 있지 않겠니.
그래서 사냥꾼은 원숭이가 잘 보이는 나무 뒤까지 바짝 다가가 총을 딱 들고 겨누었지.
사냥꾼이 막 방아쇠를 당기려는데, 아 글쎄 원숭이가 이런 소리를 하지 않겠냐.
'네가 나를 쏘면 네 어머니가 죽게 될 거야. 쏘지 않으면 아버지가 죽을 것이고,'
그리고 는 다시 원래대로 척 앉아가지고 나뭇잎을 씹어 먹으면서
가끔가다 한 번씩 머리나 뱃가죽을 슬슬 긁고 있는 게야,
자, 너희들이 사냥꾼이라면 어쩔 테냐?"

일곱 살 때 이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답을 찾았다.
하지만 엄마 마음을 상하게 할까 봐 아무에게도 애기하지는 않았다.
내가 만약 사냥꾼이라면, 나는 그 원숭이를 쏘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야 다른 사냥꾼들이 다시는 똑같은 곤경에 처하는 일이 없을 테니까.

-이스마엘 베아 <집으로 가는 길> 마지막 부분


*이 글은 세사이 할아버지가 마을아이들에게 항상 들려주는 이야기의 부분이다.
놀랍고 아름다운 구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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