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영향력

김계희
2017-11-27
조회수 668

작성일 2010년


메일 주소록에는 <항상 미소>는 아이디의 주소가 있다.
그분은 병원의 홍보마케팅을 담당하시는 실장님이신데 지난해 어느 자리에서 <어떤 영향력>이라는 주제로 발표하는 자리가 있어 그분에 대한 일화를 발표한 적 있었다.


육년전 달력을 어떤 병원에 넣기 위해 몇년동안 담당자와의 미팅을 요청한 일이 있었다.그런 일들은 모두 전화로 이루어지는 것이라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담당자의 목소리를 통해 일에 대한 가능성의 여부를 점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담당자의 목소리가 무기력하고 심드렁하다면 샘플을 보낸다 해도 무성의하게 보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그 담당자와 만나기를 이년동안 요청했지만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단 한번 통화가 된적이 있었으나 샘플을 가져와 보라는 조금 귀찮은 듯한 답변이었다.많은 업체들에서 수많은 샘플을 보내올 것이므로 그런 요청을 받게 될때 담당자들의 대부분 그러하다.그럴때 가장 크게 드는 생각은 샘플을 뜯어 보기는 할까 하는 의구심이다.역시 약속한 시간에 담당자는 외근을 나가있었고, 나는 샘플만 두고 왔고,예상한바데로 피드백은 오지 않았다.


삼년때 되던 해 또 한번 통화를 시도했는데 이번에는 전화기의 목소리가 바뀌었다.목소리는 적극적이고 밝았으며 첫 30초동안의 나의 설명을 배려있게 들어주었다.담당자가 바뀐 것이다.
그가 이야기를 친절하게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조금 더 일찍 전화하시면 좋았을텐데요,저희는 이번에 컨셉을 정해 일이 벌써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그런 종류의 달력에 관심이 많으니 다음해에 또 한번 연락을 주시겠어요?"하시며 내년 어느시기에 샘플을 보내는 것이 좋은지 일정에 대한 정보도 주셨다.
그때 나의 느낌은 큰 월척을 낚은 느낌이었다.내년에 연락을 달라니! 희망이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갔다.그것은 일의 성사 여부를 떠나 제품을 관심있게 보아줄 것이라는 가장 첫단계의 희망이었다.


일을 하면서 여러 경우를 겪게 되는데 한번은 어느 업체의 담당자와 어렵게 약속날짜를 정해 서울로 가던 날 담당자는 휴무였고 담당자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니 깜짝 놀라며 설마 대구에서 여기까지 올줄은 몰랐다고, 그래서 그냥 오라고 이야기 한건데 미안하다고, 그리고 자신들은 자체 제작을 하기때문에 달력은 도로 가져 가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그렇게 매번 심드렁하던 답변과 낭패를 보며 조금씩 위축되어 가던 나로선 그분의 답변은 대단한 용기를 주는 것이 아닐 수가 없었다.내년에 다시 한번 연락을 달라니!


그리고 다음해 샘플을 들고 찾아갔을때 그는 나를 반갑게 반기며 커다란 박스를 들고 나왔는데 거기에는 자신이 모아둔 여러종류의 달력샘플들이 들어있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또 다시 희망이 생겼다. '일에 대한 의욕이 대단한 분이구나.이렇게 달력들을 모은 걸 보면.이런 분이라면 내것도 성의있게 봐주시겠지.관심있게 본다면 언젠가는 내 달력을 떠올리게 될거야.' 펼쳐보지도 않고 거절당하는게 부지기수였던 나로선 달력을 들고 이런 저런 구상들을 이야기 하는 그 모습을 보며 희망을 엿보는 듯 했고 달력에 이렇게 관심이 많은 분을 만난 것 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물론 그해에도 일은 성사되지 못했지만 그 분이 내 달력이 마음에 들어 추진하고자 했다는 것을 알았기에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았다.그리고 얼마후 괜한 수고를 하게 해서 죄송하다는 전화와 함께 작은 선물이 도착했는데 일을 하면서 그런 호의를 받아본것은 처음이라 놀랍고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일을 참 멋지게 하는구나.참 배울 점이 많은 분이구나.'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해 달력은 그 병원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그렇게 오년만에 일을 성사시키고 난 후 지난 수고들에 대해 차오르는 감정과 함께 그 분에 대한 고마움에 차올라 일이 마무리 된 후 그 분께 편지를 썼다.
처음 전화를 받던 실장님의 목소리가 내게 희망을 주었다고,새로운 담당자조차 변함없는 멘트가 돌아왔다면 아마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고,진심을 가득 담은 편지였고 그 분께서도 기뻐하며 답장을 보내왔다.


적어도 관심있게 들어준다는 것,포기할뻔 한 시점에서 다음칸이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주고 결국 그 일을 이루게 하였으니 일이라는게 이렇게 성사되는것이구나 하는 생각 속에서 내가 배우게 된것은 정말 값진 것이었다.
나 또한 필요없는 방문이나 전화를 심드렁하게 거절할때가 많지만 그 경험을 통해 되도록이면 친절하게 대응하게 되었다.영업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수많은 거절속에서 조금씩 위축되고 자신감을 잃어가게 되는데 "제가 다음번에 그것을 살 일이 있으면 꼭 그 제품을 사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건내며 거절한다면 물론 내가 그 물건을 사게 될일이 없을지라도 그러한 친절한 응답이 그로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또 용기내어 찾아갈 수 있는 힘을 줄것이기 때문이다.


그분의 아이디는 <항상 미소>이다.그 아이디처럼 그분은 바쁘고 지치는 업무 속에서도 목소리가 밝고 적극적이다.일을 보다 잘해내고 싶어 하는 열정이 느껴지고 상대방을 파트너로서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이 느껴진다. 자신들의 이득과 나의 이득을 공정하고 분별있게 처리한다.
내가 <어떤 영향력>에 관한 발표에서 전하고 싶었던 것은,우리는 자신이 어떤 식으로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지 모르고 살아가지만 분명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수많은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찾아갈 수 있게 한 힘을 준 목소리, 결국 그 일을 성사시킬 수 있도록 지속적로 희망을 준 목소리,그것은 친절하고 배려심 있는 목소리로 다음을 기약하는 목소리였다.


그곳과는 그후 삼년동안 거래를 했고 담당자가 바뀌면서 올해는 일이 성사되지 못했다. 매출의 반을 차지하는 큰 업체여서 실망감이 없을수는 없겠지만 그간의 거래로 인해 경제적 기반을 다질수 있었고 그때의 좌절과 희망과 배움은 내 인생에 잊지 못할 경험이어서 이 정도에서 마무리 되는것 또한 적절하게 생각되었다.
그 삼년동안 진심으로 고마움속에서 일을 했다.어렵고 까다로운 일이 생길때에도 고마움을 받았다는 생각을 하면 저절로 정성이 모이고 최선이 다해졌다.


첫 거래가 성사되었던 날, 벨이 울리는 핸드폰에 찍힌 전화번호를 보며 두근거리던 가슴,'안되더라도 실망하지 말아야지.' 수초간 호흡을 고르던 일,그리고 온가족이 기뻐하던 그 축제같은 분위기를 기억한다.
그 분이 병원을 떠나면서 처음으로 함께한 술자리에서 그를 배웅하며 나는 이야기 했다.
"그때 온가족이 참 기뻐했습니다."
그 분이 술이 취해 그 이야기를 기억할지 모르지만 나는 온가족이 기뻐하던 그날을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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