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감사를

김계희
2017-11-27
조회수 708

작성일 2010년


처음으로 소리바다에 가입했고 엠프쓰리라는 걸 다운받았고 씨디 굽기도 했다.
엄마는 오래전부터 몇몇곡의 제목을 알려주며 그 음악을 좀 사달라고 했지만 "응응 알았어" 대답만 하곤 몇년이 흘렀다.
엄마는 일년전 교보 핫트랙에서 <베스트 오디오필 보이시스> 라는 씨디를 하나 사왔다.
가격은 18000원, 총 15곡의 노래 중에 엄마가 아는 노래, 원하는 곡은 단 하나다.
가끔 내게 사달라고 이야기 했던 노래중의 하나가 그 곡인데, 교보에 가면 음악시디를 많이 판다는 걸 어디선가 듣고 물어물어 찾아가 점원에서 제목을 말했나보다.
결국 난 "응, 사주께." 하고선 십년 동안 한번도 안사준거다.

어느날은 시장서 음악씨디를 파는 아저씨께 부탁을 해서 동요와 가요 몇개를 넣은 씨디를 만들어 왔는데 "어, 그거 내가 컴퓨터로 해줄 수 있는데." 하고선 한번도 안해준거다.
얼마전부터 씨디가 하나 없어졌다고 내 것과 섞인것 같다고 물어서 "찾아볼께." 라고 말했는데 난 한번도 안찾아 본거다.

엄마에게 씨디는 몇개가 되지 않는데 그나마 절반이 이젠 나오지도 않는다.
그저께 야심찬 마음으로 소리바다에 가입했고 엄마가 좋아하는 음악들을 다운받았다.
"듣고 싶었던것 다 말해." 라고 하니 주섬주섬 공책의 책장을 넘기는데 그간 적어 놓았던 노래 제목들이 공책 구석구석에서 쏟아져 나왔다.
얼마나 그 노래가 듣고 싶었으면 가본적도 없는 교보문고에 가서 그걸 샀을 것이며 이런걸 적어 놓았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찡했다.

아무튼 장장 이틀에 걸려 7종류의 음악 셋트를 만들었는데, 어쭈구리, mp3 파일로 복사한 씨디가 구형 씨디플레이어라서 인식이 안되는거다. 바로 이마트 가서 14만원짜리 씨디피를 사서 왔는데, 엄마는 비싸다고 혼을 내는거다.
"어휴, 엄마. 그렇게 살지마. 앞으로 살아봐야 십년밖에 못살어."
그런 엄마는 내가 듣는 오디오의 가격을 알면 깜짝 놀라 까무라 칠거다.
아무튼 그날 후로 엄마는 이틀 내내 자다깨다 음악을 틀어놓는거다.

아침엔 엎드려 무언갈 적고 있길래 가보니 가사를 따라 적는데 컴퓨터로 가사도 찾아줄수 있다고 하니 "이것 하나만 알면된다." 고 하는거다.
아닐거다 엄마는. 그것 하나만 적을 게 아닐거다. 아마도 알고싶은 가사가 족히 마흔개는 넘을거다.
그러면서도 내가 귀찮을까봐 그것 하나라고 하는거다.
그러면서 엄마는 다 못적고 놓친 가사를 다시 적기 위해 씨디가 한바퀴 돌아 그 노래가 다시 나올때까지 15곡을 기다려야 할거다.
<앞으로> 버튼을 누르면 그 곳이 다시 재생된다는 걸 알려주긴 했지만 엄마는 1분도 안되 어떤 버튼을 눌러야 하는지 잊어버릴거다.

그래서 씨디피에 소리, 시작, 앞으로, 뒤로 이런걸 종이에 써서 붙여 놓았는데 오늘 아침엔 버튼을 잘못눌러 노래가 나오지 않는데도, 얼마나 듣고 싶었을텐데도, 내가 내가 귀찮을까봐 깰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거다.
엄마는 원래가 뭘 해달라거나 그러질 않는 사람이라 만약 뭘 하나 해 달라는 이야길 한다면 그건 무지 무지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거다.
엄마는 저렇게 웅크리고 앉아 가사를 받아쓰며 좀 행복해졌을 것이다.
그래서 난 내가 효녀인지 불효녀인지 생각하다가 긍정적인 쪽으로 결론을 내고 소리바다에 심심한 감사를 드렸다.



*들으시는 곡은 어머니가 좋아하는 씨크릿 러브 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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